접시꽃 당신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 오는 동안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먹장구름입니다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내 마음이 모두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짧아진 것을 아파해야합니다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듯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당신 곁에 영원히 있겠습니다.---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