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향기 여행기 (1)

by 향기 posted Jul 1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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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투어(package tour)

열흘 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니 어머님 덕분에 집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뒷마당엔 풀이 지저분할 정도로 마구 자라서 호박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도 싱싱하던, 내가심은 열 포기의  배추는 기막히게 다 녹아 버렸고,
너무 튼실해서 위협적으로 보이던 개도 많이 여위어있었다.
베란다의 내 '손바닥 밭'에서는 더덕 덩굴이 마구 엉키어서 꽃망울을 몇 개 달고 있었고,
상추, 시금치는 원래 모습을 알라볼 수가 없이 길게 자라서 꽃피고 씨를 맺고 있었다.

여행기를 쓰기는 써야하는 데..... 쓰고 싶기는 한데...
망설임 내지는 변명의 여지를 먼저 언급해야만 하는 나는 소심하다.

원래 패키지투어(package tour)라는 것이 그렇듯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대로, 심하게 말하자면
정해준 대로,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맹점이 있는 것이다. 물론 편하다는 잇점은 있다.
언제나 package로, package처럼 함께 다녀야 한다.
혼자 여행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니 불평할 여지도 없었다.
내겐 그저 '감지덕지'였다.

또 하나 여행한 일행들을 언급해야 한다.
목사님들 부부 13쌍과 싱글 여자 목사님 한 분, 여행사 사장 한 분.
이 28명중에서 우리 남편이 나이순으로 하여 끝에서 두 번째.
그 분위기가 어떠할지 대충 짐작이 되지 않을까...
목회를 2,30여 년씩 하신 반듯한 어르신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이런 것 같더라,
항상 모이라는 시간보다 15분이나 10분전에 다 모여서 차에 타고 기다리시는 거라.
시간 지켜서 정확히 가면 이건 늦은 취급받는 기분.
조바심은 또 어떤지...
뭐 좀 바라보고 생각하고 기록할라치면 뭐할라 그러냐, 무슨 공부를 그리 하냐...
같이 사진 찍자, 차 타자, 빨리 가자... (package니까...)
차 타면 함께 대화에 어울려야지, 분위기 맞춰서 크게 웃어 줘야지.. ( package로...)

여기서도 나 혼자 어디 가는 거 너무 싫어하는 내 방짝, 여행지에선 더욱 더  심했지.
투어 끝나고 저녁에 package 에서 좀 벗어나볼까하고 밖에라도 나갈라치면
보호자인 방짝의 동행 없이는  어림도 없는 말씀인데...
숙소에 돌아오면 피곤하다고 꼼짝하기 싫어하는 내 방짝.
아침 산책조차도  전날 보호자의 까다로운 결재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유쾌한 여행을 위해서 애시당초 내가 말 잘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기로
맘먹고 출발했었다.    

그러니 기록은 거의 다 머리 속, 가슴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여행기라는 것이 객관적이며 정확한 사실도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영 자신이 없어서
쓰기가 망설여지는 한편  내 머리 속이 뒷마당처럼 잡초들이 무성해지기 전에
빨리 써야겠다는 조바심도 생기는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밀린 일을 시작했어도 할 일은 아직도 많는데...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안 쓴다고 뭐라할 것도 아닌데...
아마도...
이젠 package에서 벗어났으니 지 맘내키는대로 쓰고 싶은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