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오면 생각나는곳 (청량대) *
( 부제: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성동역 옆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학교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학교현관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에는 봄이오면 노란 개나리꽃 사이사이로 진분홍색
밥 풀꽃이 섞여서 <나중에 알고 보니 박태기 꽃 나무이었다.> 피어 있던
약간은 굽은 길로 학교 교실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은, 이맘 때쯤 이였는지
조금은 시원하기도 하여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거의 환상적인 것이었다.

(사진속의 꽃이 박태기꽃임)
그러잖아도 이십 몇 대 일로 들어 왔다는 긍지와 멋있는 곤색 상의 안에는 하얀
칼라에 사선으로 짤라서 만든 곤색 넼타이까지 턱 매고 나풀거리면서 강종 강종 ,,,
지금 생각해 봐도 해방후 그 난시에 그런 휏션으로 교복을 차려입고 (곤색
교복치마는 어머니의 세루치마를 염색해서 해주셨다) 얼마나 신이 났었을까 ...
그 후로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긍지가 평생 나를 지탱해주는
최고의 버팀목 역활을 상당히 크게 하였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한테 까지도...^^
그 시절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 나는 닭 머리 보다는 소 꼬리를 택했노라고...` ^^
` 그래도 덩치가 큰것은 소 잖아 `하면서... ^^
처음 입학을 하자마자 조사한 앙게이트에서 7회 입학 신입생중에 우등 안한
사람 없었고 반장 안한 사람 없었다는 말이 전 해졌다.
내가 살아온 일생 중에서 어린시절, 나만의 그런 기쁜날이 있었던 건 정말 너무나
큰 축복 이었다. 6.25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뿔뿔이 깨어져 버린 환상이 되어
버렸지만....
학교 본 교사 앞의 정원은 유럽풍으로 그 당시에는 그런 식 정원을 가진 학교가 또
있을까 싶게 멋있고, 한 가운데에 큰 분수대도 있고,.. 규모는 좀 작았지만,...
몇해 전엔가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때 보니 벨사이유궁전의 정원이 그런식 이었다.
소련의 상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제정 러시아의 여름궁전도 그런식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거기 그 분수대에서 물이 품어져 나오는걸 나는 한번도 본 기억은 없다.
3 층 교실에서 내려 다 보이는 잘 꾸며진 정원을 보노라면
우리는 모두 귀족 집 자제들이 였었다.
고3 졸업반 무렵에는 그 분수대 위에서 같은반 친구들과 함께 ` 나도 나도` 하면서
우루루 하도 많이 올라와서 떨어질까봐 서로 끌어안고 끼어서 얼굴 남기기 기념
사진도 많이 찍었었다.
넓다랗고 네모가 반듯한 운동장에서는 럭비반 상급생 운동선수들이 다람쥐 같은
옆으로 무늬진 유니폼을 입고 한쪽으로 긴 럭비공 < 그렇게 생긴 공은 그때 처음 봤슴 >
을 차면 꼭 삐뚤어지게 날라 와서 우리를 당황하게 하곤 했었다.
매주 어느 요일엔가 있었던 교련 조회, 멋있고 신나는 취주악단의 연주에 발 맞추어서
보무도 당당하게, <맨 꼬랑지에 졸졸 쫓아갔지만,> 그 위용이란 정말 용두동 일대를
뒤 흔들어 놓지 않았었을까?
나는 제일 큰 나팔, 메기에도 힘들어 보이는그 큰 나팔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행진을 하면서 붕붕 대던 그 취주악단 `옵빠 ?`가 제일 인상에
남아 있다.
어느 여름날 3층 음악교실, 어느반 음악 시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흘러 퍼져 나오던 (오랜지꽃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합창곡은 나이를 잔뜩 먹어 버린 지금, 몇 십년이 흘적 지나가버린
요즈음에도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향수가 아련하게 떠 오르곤 한다.
학교 뒷길로 약간은 언덕진 길을 올라가서 있던, 선농단이 있는 <청량대>.
그 곳에서는 배구대회라던가,농구 골대가 있어서 한적한 경기장이 되기도 했다..
나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느닷없이 선수로 픽엎 되어서 상급 반 언니들과 배구
시합을 한 기억이 있다. 그때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
그곳은 이 맘때면 개나리와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카메라가 귀한 시절인 그때에는 직업적인 사진사가 노상 학교에
상주하고 있어서 봄이면 개나리꽃 속에 파뭍쳐서 한 장,
만개한 벚꽃 아래서 다 같이 한 장, 이런식으로 그나마도 열일곱살 가장 앳된
나의 학교생활 모습이 지금도 쪼끄만 흑백 사진속에 보물처럼 남아있다.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같은 반 친구는 졸업을 한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사진 속에서는 지금도 앳된 모습으로 나와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다.
선농단 비석이 있고 청량대 가시철망 담 밖에는 포도밭이 참 많았었다.
그래서 후문을 통해서 들어 오려면 구불구불 포도밭 사잇길로 와서는
약간은 급경사가 진 언덕진 길을 올라서야 학교에 들어 오곤 했었다.
그 후로 을지로 육가로 학교를 이전했지만 우리는 그리로 이사 가는걸
참으로 안 좋아했다. 학교 건물도 오래 되어서 후질근하고 교실 마루가 다
달아서 삐걱거리기도 하고 어둡고 침침한데다가 마당도 비 좁고....
참 ! 금단추가 쭈른이 달린 마치 해군제독 같은 제복을 입고 금테모자 까지
쓴 수위 아저씨는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는 걸 봐도 절대 저지하지를
못했었다.그 제복의 수위아저씨도 멋졌지만 우리도 얼마나 자랑스러웠었는지... ^^
지금도 청량대엔 여전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있을 것만같고 교문에서
학교 현관으로 들어가는 완만하게 구부러진 길 양옆에는 이 봄에도
노란색 개나리와 진분홍색 박태기 꽃이 한창 곱게 피어 있을것만 같다.
그곳이 우리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많은 추억과 진한 우정이 변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원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5일 씀
< 추신 >
이 글은 이미 전에 실었던 이야기를 엣날 청량대 시절이 새삼 그리워 다시 올려
보았습니다. ^^ 매번 지루하게 긴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시는 모든 선 후배
님,7회 동기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7 월 11일 Skylark.( 7회 )
(참고, 청량대.. .후배 동문님들은 잘 모를 곳입니다. 그곳에 선농단도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