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飛行
누가 기분 좋은 상태를 '비행기 타는 기분'이라고 했는지...
비행기를 여러 번 탈수록 이 말에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늘 'economy class'로만 다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밤 비행기, 그것도 고속버스 좌석의 칸보다도 더 좁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잠도 잘 수 없는, economy 좌석에서 나의 유일한 재미는 GPS를 보는 것이었다.
지리 시간에 배웠던 세계지도를 새삼 다시 떠올리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지금 가는 저 900에서 1000 이상의 Km/h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또 10000Km 고도는...
어디쯤 날고 있는지, 이 밑의 세상은 어떠할 지를 생각하고 상상하며....
비행기는 순간 속도 250Km 이상은 되어야 땅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 같다.
--지금 내 삶의 속도는 얼마일지도 궁금하고, 얼마만큼 더 속력을 내어야 한 단계 위로
비상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 그만 날기는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등등 .....
쓰잘 데 없는 생각이 거품처럼 일었다.
비행 시작해서 딱 1시간 되니 우리 나라 영공을 완전히 벗어났다.
하루 밤을 하늘에서 보내고 호주에 영공에 들어서면서 1시간 손해봤다 (우리보다 1시간 빠름)
흰 구름 위로 날고 있는 것이 보인다.
6시 40분쯤 되니 여명이 황홀하다.
미색에서 주황, 핑크, 보라, 남보라 색까지의 띠를 만들고 있는 하늘.
햇빛 한 조각이 비행기 날개 끝에 새처럼 날아와 앉았다.
뭉클뭉클 복잡한 내 머릿속 같은 구름.
바람 따라 빠르게 날아가는 구름
눈 쓸다가 한쪽으로 밀어놓은 듯한 구름
구멍난 얼음판 같은 구름
그 사이로 점 만한 작은 마을과 숲이 보인다.
비행기 날개 전체에 햇볕이 실렸다.
날이 완전히 다 밝은 7시쯤부터 밑을 보니 푸른 숲에 한결 같이 붉은 지붕의 집들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75년부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름답게 보이도록 정책적으로
그렇게 권장했다는 데 이제는 누구나 그냥 그렇게 한다고 한다.
붉은 기와는 화산재와 남미에서 수입한 테라코타로 단열효과가 뛰어나단다.
2000m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의 항구가 눈에 들어오면서
출근하는 차량들이 푸른 숲 사이의 완만하게 굽은 길에 즐비한 것이 한 줄로 보이고,
고도가 점점 낮아짐에 따라 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들이 검푸른 숲 사이에 거의 네모지거나
타원의 연둣빛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유난히 돋보였다.
시드니 시내에 공원만 1007개라고 하더라.
9시간 30분의 비행을 끝내고 공항에 내리니 까다로운 검색과 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현지 여자 가이드는 언뜻 보기에도 따뜻해 보이는
하얀 겨울 코트를 입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