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3.11.13 07:46

病 床 에 서

조회 수 2279 추천 수 45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病 床 에 서

    이 한 달 동안 알부민을 벌써 열일곱 병째 맞았는데도
    별 차도가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속인가.
    처음엔 慢性肝炎이라더니 뭐 硬變증세도 좀 있다는
    소리는 뭔지. 그럼 癌 ? ? 설마 - 아니야 ! 그럴 리가
    없어 ! 아니야 ! 아니야 ! !

    왜 진작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가.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8년 전엔가 Y선배가 병석에 있어 문병했을
    때 그분이 한 말도 바로 그 말이 아니었던가.
    “나도 醫師지만 이 世上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健康“이라고. 그 때 그 분은 낮의 公職生活과 저녁의
    자그마한 醫院경영을 함께 한 것이 결정적으로 건강을
    해쳤다고 하면서 그간 뼈를 깎으며 애써 모아 놓았던
    財産을 2~3年 사이의 病席에서 모두 까먹고는 제 살을
    베어 만든 財産도 제 살을 다시 이루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듣고 심각하게 首肯하고 納得만
    했었지 스스로 銘心 決行까지는 못하였으니 어찌 진실로
    깨달은 것인가. 어찌 어리석음이 이토록 깊었던가.

    오늘도 담당레지던트는 배를 몇 번 눌러본 뒤 눈꺼풀을
    젖혀 보고는 몇 마디 묻기만 하고 나가 버렸으니 그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好轉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는
    거나 아닌지. 腹水를 다시 빼어보고 싶으면서도 내가
    눈치챌까봐 꾸무럭거리고 있는 거나 아닌지.
    아무래도 요 며칠 사이 肝이 눈에 띄게 더 커진 것도
    같고 배도 더 불러진 것 같은데 담당의사는 자꾸
    아니라고만 하면서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으니 더욱
    수상하지 않은가. 저녁에 차트라도 슬쩍 들춰 볼까.
    아니야 거기 엄청난 거라도 써 있으면 어쩌려고.
    혹시 癌인걸 내겐 속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랬다간 나는 破滅이다. 그 絶望을 어떻게 견디어 낸담.
    아니다. 내 차트를 딴 것들처럼 함께 놓아두지도
    않았을 게다. 설혹 놓아두었기로 사실대로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게다. 언제고 내가 들춰볼 경우를 대비했겠지.

    아- 답답하구나. 나는 왜 이렇게도 不幸하단 말이냐.
    平均壽命만 산대도 아직 20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後悔스럽구나. 왜 좀 더 멋있게, 좀 더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했던가. 왜 좀 더 폭 넓게 살아오지 못했던가.
    남들처럼 아이들 손잡고 어린이 大公園에라도 자주
    가지 못했던가, 아내와 함께 外食이라도 가끔 나가고
    劇場구경이라도 좀 다니지 못했던가, 친구들이 어울리는
    野遊會에도 가끔 나갔어야 했을 걸, 이웃 醫師들이
    권하는 테니스도 진작 시작했더라면 아마 지금 이렇게
    건강 걱정은 안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불우한 이웃을
    돕자고 誠金을 낼 때도 뒷전으로 돌고, 어려운 환자에게도
    꼬박꼬박 다 받아 내려고 했었지, 團體가 하는 일에
    나라가 하는 일에, 나는 不平만 해 왔지 뭐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父母 - 妻子 - 이웃 - 親舊들 - 나라 - 民族---
    아-- 나는 이들을 위해서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남의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고
    악착같이 벌어 모은 게 몇 채의 집, 몇 백 평의 땅,
    몇 만평의 野山, 時勢가 좋아져서 억대부자가 될 것만을
    생각해 왔던 게 아닌가, 죽어 한 평 차지도 못할 걸
    무엇하러 그렇게 욕심을 냈었던가, 子息에게 물려
    준다는 게 愛情의 表示라고 생각되던 시절도 이제는
    가지 않았는가.

    後悔한들 무슨 소용.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인 것을.
    죽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지 살아야한다.
    이런 후회스런 지난날을 몽땅 만회하기 위해서도
    살아나야겠다.

    제발 癌만은 아니어라. 아니 설혹 癌이더라도
    할 수 없으니 다만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는
    良性細胞型이어라. 그래서 내가 다시 깨어난 새로운
    삶을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時間만 다오.

    神이여 ! 이 마지막 所願만이라도 廳許하여 주소서.

    *이 글은 픽션입니다.


  • ?
    김 혁 2003.11.13 21:40

    심영보 동기님,

    먼저 좋은 글을 올려주시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가상적인 소설같은 내용이지만 의사가 환자가 되어
    의사가 썼으니 실감나게 잘 묘사하였습니다.

    의사가 환자가 되였으니 자기 병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알게 될 것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층
    더 심각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과거를 참회하고 회생을 갈구하는
    모습이 건강한 사람에게도 많은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김 혁 드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57 조금씩만 / 이정하 鄕 村 2003.11.13 2261
6756 [re] 病 床 에 서 소정 2003.11.13 1756
6755 [re] 病 床 에 서~~ 놀래 버려서.... Skylark(7) 2003.11.14 1651
» 病 床 에 서 1 沈英輔 2003.11.13 2279
6753 [re] 낙엽아 ! 가을 낙엽아 !! 소정 2003.11.16 1387
6752 낙엽아 ! 가을 낙엽아 !! Skylark(7) 2003.11.13 2088
6751 선배님, 배호노래 너무 좋아요!! 1 stella 2003.11.15 1645
6750 [re] 가을 강가에서.... 1 청초 2003.11.16 1665
6749 가을 강가에서 소정 2003.11.15 1600
6748 갈대 / 신경림 2 이문구(11) 2003.11.15 1467
6747 "알마티노"의 노래 한곡(곡목 변경) 4 임효제(11) 2003.11.16 1497
6746 Thanksgiving Day 1 푸른소나무 2003.11.16 1296
6745 가을에 / 정한모 김 혁 2003.11.16 1074
6744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Dana Winn 김 혁 2003.11.18 1303
6743 마지막 장미 한 송이 鄕 村 2003.11.19 1485
6742 먼 山 2 임효제(11) 2003.11.20 1335
6741 부담없는 동행 鄕 村 2003.11.20 1488
6740 내인생에 겨울이온다해도 4 소정 2003.11.20 1425
6739 행복한 사람 1 푸른소나무 2003.11.20 1770
6738 [re] 사랑 그리고 그리움 / 이효녕 소정 2003.11.20 1394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358 Next
/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