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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7 21:32

시 아버님의 눈물

조회 수 1007 추천 수 16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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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아버님은 1919년 생이시다.
시아버님은 일찍이 경찰에 뜻을 두고 오랜 세월 공직생활을 해 오셨다.
재직시 아버님의 비화는 우리 역사의 굴곡만큼이나 두껍고 현란하다.
아버님께서 하신 일이 손으로 꼽지 못할 정도로 많지만
당시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청소년을 위해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가며 관내에 학교를 세우고 배우고자하는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틔워준 일은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갓 시집온 막내며느리에게 어렵기만 한 시아버님이었으나
나는 아버님께 잘 해 드리고 싶었으며 무엇으로든 인정받고 싶었다.
숭늉을 좋아하시는 아버님께 구수한 숭늉을 만들어 드리는 그 일로라도..
그러나 아버님은 며느리사랑은 시아버님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아시는지
잘 대해주시기는 하였지만 내 마음에 흡족치가 않았다.
좀 더 애틋한 정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세월이 지나며 쌓이는 정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점을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나는 우리 친정을 대표한 선수가 아닌가 말이다.

첫 아이를 낳고 이듬해,
식구들이 시골에 계신 시 할머님을 뵈러 갔을 때였다.
아흔을 넘기신 할머님은 진지도 잘 드시고 건강하다 하셨지만
관절이 불편하셔서 보행을 전혀 못하시고 앉아만 계셨다.

할머님은 서울에 사는 아들집에 가 보기를 원하셨고
아버님 또한 할머님을 모시기 원하는 마음이었으나
거동이 불편하여 진지 수발부터 변을 받아 내야하고
일상의 모든 일에 사람의 손이 필요한 할머님을 모신다는 일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버님은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어머님은 그 곳 일을 보기에도 시간이 넉넉한 분이 아니었다.

혼자 계시며 할머님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하셨다는
큰어머님은 할머님과 함께 하는 일이 곧 생활이었으나
우리에게는 큰 프로젝트라..
나는 아버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할머님을 모시자 청했다.

갑자기 결정된 상황에
동네 장정들이 할머니가 앉아 있던 개시미론 이불 네 귀퉁이를 잡고
차로 모시면서 - 그렇게 함께 하고 싶어하던 아드님과의 한집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약 한달 여를 서울에 거하시던 할머님은
다시 시골 당신 집으로 가기를 원하셨으며 그해 여름 할머님은 영원히 떠나셨고 할머니의 꽃상여를 붙들고 통곡을 하시던
아버님의 울음이 하도 절절해 함께 울었었다.

할머니를 보내고 며칠 뒤 아버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가, 나는 네가 총명해 보여서 아꼈다.
그러나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아니하는 것처럼
너의 빈 데가 없어 보이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정이 덜 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봄에 할머님을 모시면서 나는 너를 다시 보게 되었구나.
요즘 젊은 아이들이 냄새나고 손이 많이 가는
노인네들 곁에나 오려 하겠느냐.
그런데 너는 즐거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씻기고 변을 받아내며
종일토록 시중을 들어주고 말벗을 하여주었으니
내가 네 마음을 이제 알겠구나.
할머님이 네 얘기를 그리 자주 하시더구나.

아버님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치하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 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할머님을 모시고 온 다음 날,
할머님이 주무신 방에 들어갔더니 정말로 익숙치 않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나는 곧 할머니를 위해 목욕물을 데웠고
거동 못하는 할머님이니까 방으로 부지런히 물을 나르기를 수 차례.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고
엉덩이를 닦아 드리니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얘, 아가야 내 몸에 뭐가 났지?(그걸 뭐라 하나요?
왜 피부에 돋는 바늘 끝 만한 작은 돌기 말예요)
그런 거 나면 오래 산다더라!

신세대 손주며느리는 할머님을 예쁘게 해 드리느라고
머리도 빗겨드리고 로션도 발라드리고 거울도 비춰드렸어요.
만족해하는 할머님을 위해 이번에는 점심을 차려드리고
더 이쁜 짓 하느라 한 술씩 떠 넣어 드렸답니다.
운동이 없던 할머님은 하루에 한 알 변비 약을 드셔야 했고
용변은 받아 드려야 했어요.
용감한 명자는 할머님의 변도 받아내고 또 물로 닦아드리고.

하루, 이틀, 사흘.. 일 주일 이주일..
시간은 흘렀고 나는 스스로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면서 공(功)을 마음에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끔씩 노인성 치매로 정신이 흐려지곤 하시던 할머님은
노인 특유의 아들 사랑 법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낮에는 나와 함께 하며 나의 시중을 받으시다가
아버님이 들어오시면 다른 사람에게는 시선 한번 주는 일없이
아버님의 시중만을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식사시에도 아버님의 수저만 받고 저녁 내내 아버님만을 곁에 두고자 하셨다.

나는 은근히 서운했다.
나를 칭찬하는 마음이 무색해지며
이제 할머님이 시골로 가신다고 하면 잡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언제 본댁으로 가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사한 나의 마음이여.

한 달을 같은 마음이지 못하고
노인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나를 그렇게 칭찬해 주시고 마음에 담아 두셨으니
할머니보다 눈이 밝았던 내가 할머니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나였으니 아버님의 눈물 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었고
스스로 부끄러웠던 것이다.

할머님.
보고 싶습니다!



  • ?
    김 혁 2004.02.08 17:45

    어제는 전에 같이 근무하든 직장 동료들과
    함께 북한산에 다녀왔습니다.

    요사이 우리 홈에 글을 올리는 동창이 줄어서
    오늘은 누가 글을 올렸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들어와 보니 명자 후배를 만날 수 가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후배가 그렇게 훌륭한 효부였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요사이 젊은 이들이 마음씨 착한 이가 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헬레나라는 본명도 갖게 되었나 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봉사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 ?
    청초 2004.02.09 00:01
    명자 후배님.

    우선 반갑습니다.

    자기의 심상을 이렇게 담담하게
    읽는 이의 느낌이
    똑 같이 공감이 가게 쓰신
    글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물론 정말 효부이시기도 하구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2004년 2월 청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