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아 버린 우유 투입구...

by Skylark(7) posted May 20,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막아 버린 우유 투입구  

      오늘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우유 투입구를 막아 버렸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때는 새벽에 이리로 신문과 우유를 넣는 "우드득"
      하는 소리 때문에 잠결에 온 가족이  깜짝 놀라기도 하던 생각이 난다.

      밖에 비가 오는줄 알고 들고 나가다 날이 개어 필요 없어진 우산이나
      물건들을 밀어 넣기도 하고. 그곳을 드려다 보고 식구에게 전할 말도
      전하기도 하며 바쁜때 일일이 열쇠로 문을 따는 분주함을 덜기도 하며
      편리 하였었는데...

      빈집인걸 알고는 도둑들이 그 구멍으로 최신형 내시경을 넣어서 핸들을
      풀고 몽땅 물건들을 털어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고 뉴스에 자주
      나오곤 하더니 드디어 이곳 아파트 관리실의 권고를 받아 들여서 뒤늦게
      우리도 할수없이 그리 하기로 하였다.

      어느날 심심하여 우연히 책 꽂이에 꽂힌채 오랜 세월에 표지가 누렇게
      변해 버린 옛날 수필집을 꺼내서 읽은 적이 있다,

      노천명시인, 최신해 전 청량리 정신병원장 ( 이분은 너무나 유명하신
      한글학자 최현배님의 아드님으로 아직도 생존해 계신지 궁금하다)
      피천득교수,박화목, 박완서등 당시에도 유명하셨던 여러분들이 쓰신
      수필집이다.

      그 시절에는 도둑이 고추장 단지니 된장단지니 하다못해 빨랫 줄에 널어
      놓은 물에 젖은 세타나 내복등의 빨래를 훔쳐간 이야기도 써 있어서

      (그래,그때는 참 그랬었지) 하고 끄덕끄덕 공감을 하기도 하고 당시 6.25
      전쟁 후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그 시절 이야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60년대 당시 흔하게 겪은 일들이지만 이렇게 글로 남기니 그 당시의 시대상을
      알게 되어 이제는 너무나 급변한 세상 살이를 알게하는 기록물이 되어 있다.

      실제 나도 물자가 아주 귀하던 그 시절, 친정 어머니께서 세타를 짜는 집에서
      마음 먹고 떠 주신 순모로된 남편의 세타와 내 털 속치마를 빨아 널었다가
      잃어 버리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날씨도 너무나 춥고 난방 연료도 시원찮아서 한 겨울에 안방
      웃목에 둔 숭늉 그릇이 잠을 자고 나면 밤새 꽁꽁 얼어 있곤 하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옛날같이 출입문 겉에 열쇠로 문을 걸어 놓을라치면
      "도둑님 우리 집은 지금 비어 있으니 마음놓고 훔쳐 가시오"
      라는 신호로 보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출입문에 비밀번호를 찍게도 하고, 얼굴과 손가락 금을 認知
      하는 key, 손등의 심줄이 사람마다 각각 다른 점을 이용하여 이를
      認知시키면 되는 방법등 여러가지 열쇠 장치가 개발된 걸로 안다.

      세계 여러나라 여행을 다니면서 보니 호텔마다 그 열쇠 장치도 전화카드처럼
      된것도 있고 그냥 재래식 key 로 된것도 있어서 그 다양성을 경험 하였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의 일상 생활을 한층 편리하게 하고 모든 기능들을
      몰라보게 향상 시켜서 정말 氣가 찬 세상으로 바꿔 놓기도 하였지만,

      이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과 경기 불황으로 인해서 살기가 힘이
      들어지니 컴퓨터 조작만 으로도 남의 통장에 들어 있는 멀쩡한 남의 돈을
      묘하게 꺼내 훔쳐가는 세상이 되어 있으니 문을 열고 도둑질 하는건
      아주 원시적인 방법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는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에 감시 카메라도 달아
      놓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너무나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버리기  
      아까운 그  말짱한 우유 투입구 틀을 그냥 보관해 두기로 했다.

      혹시 세월이 좋아져 그것을 다시 달고 우유와 신문을 받기도 하고
      우산을 집어 넣기도 하고 긴요한 말도 전하며 살수 있는 그런 세월.

      그런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 오기를 기대 하면서.....


                                                04년 5월 20일 Skylark(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