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참새 와 우산

by 소정 posted Jul 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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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새와 비, 그리고 우산 ++

말없이 마주 앉은 우리는
한 모금씩의 차를 마셨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멀리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하얀 물안개를 바라보며
우리는 시선을 달리한 채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듣는다
오직 음악을 듣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가끔 씩
마시다만 찻잔을 바라보지만
식어버린 언어들이 서늘한 찻잔 속을 맴돌고 있을 뿐.

누군가 빗속을 걸어가고 있다, 우산도 없이
그래, 사는 건 어차피 비를 맞으며 가는 것이지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흘러도
빗줄기에, 빗물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인데
그렇게 가고,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슬프다거나 외롭다는 건 사치일지도 몰라
눈이 마주치자 그는 희미하게 웃고있다
눈물보다 더 진한 연민을 담고
그래, 눈으로도 음악을 듣는구나
그 눈가에 차이코프스키의 슬픔이 흐르고 있다
빗줄기가 마치 바이얼린의 현(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빗줄기를 뚫고 참새 한 마리가
길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여전히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그 속에 어젯밤 반짝이던 별들도 섞여 떨어지고
산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참새
그들은 왜, 무엇을 향해 떨어지고 오를까

그가 자리에서 안개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빗속으로 그냥 걸어나갔다
그가 빗속을 뚫고 참새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그를 따라 나섰다.
방안에는
그의 낡은 우산이 오도카니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비오던날 일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