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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0:39

병아리 이야기<2>

조회 수 554 추천 수 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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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아리 이야기.<2>

      매일 드려다 보니 크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 마리가 무럭무럭 잘도
      컸다. 살은 안 찌고 수탉인지 목만 길고 비쩍 말랐다. 어쩌다 마당에 놓아주면
      개집 안에 있는 개의 눈등을 피가 나게 막 쪼아 내 쫓고 개집을 차지하고 들어갈
      정도로 사납기 그지없다. 개가 순해서 바보인지 닭이 극성맞은지 어지간히 커도
      알도 낳을 기미가 안보인다.

      아이들의 관심도 좀 벗어나는 듯 하여 이를 잡아 없애야 되겠구나 궁리를 해보아도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재래시장 닭 집에 가서 팔려고 해도 살 의향이
      없다고 하니 닭 잡는 집에서 수고료를 받고 잡아 주기로 했다. 그간 단골이라
      닭을 종종 팔아 주는 터이기도 하고 마음씨 좋은 경상도 아주머니는 쾌히
      그리 해 주겠다고 하여 닭을 갖어 갔다.

      그때만 해도 살아 있는 닭을 간이 닭장 안에 가두어 놓고 팔던 시절이어서
      그중 모양이 좋은 '요놈으로 주시오' 하고 흥정을 하면 잡아주는 형식으로
      닭고기를 사 먹던 시절이다.

      그 여인은 자고 나면 닭을 잡아야 되니 소매 끝을 접어 올린 부분부터는 마치 언
      오리발처럼 노상 빨갛게 익고 얼고 하였는지 털을 뜯으려면 닭을 잠깐이라도
      뜨거운 물에 담궈야 털이 빠지고 다음에는 찬물에 씻어야 되고 내장을 꺼내려면은
      피도 튀고 입고 있는 옷은 노상 피와 닭털로 뒤범벅이 되어서도 무표정하고
      씩씩하게 일을 하지만 보기에 너무나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닭 가게 안에 함께 붙은 종이 미닫이문이 달리고 손바닥만한 유리
      조각으로 빼꼼히 내다보이는 방안에서 노상 낚시 다닐 채비를 챙기느라 아무리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바삐 돌아가도 이는 자기와는 아무상관이 없는 남의 집
      일인양 방에서 낚시 대를 길게 빼고 늘여서 종이 문밖으로 낚시 줄 길이를 맟추느라
      쭉 빼지만 그 외에 얼굴은 볼 수도 없다.
      가게 문 앞에는 그가 노상 타고 다니는 대형 오토바이에 하얀 헬멭을 떡 하니
      매달아 놓고 항시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게 대기 상태이다.
      대체 어떤 남자일까 궁금하던 차 어느 날 인가 드디어 그 남편을 볼 기회가 생겼
      다. 그는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일까? 노상 여자에게 업혀서 평생을 이렇게 산
      사람일까....

      멀쩡하니 허우대도 좋고 머리에 별 달린 모자를 씌우면 정말 장군감이다.
      언감생심 마누라가 이리 바쁜데 왜 일을 안 거드느냐고 시비할 어른이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이렇게 잘 난 남편하고 살려니 그 여인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모시고 사는구나
      하고 생각이 드니 하는 수 없지 어떻게 하겠는가. 그나마 이 험한 장터에서 장사라도
      하고 살려면은 흔한 말로 기둥서방이라도 두어야 할 판이니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지, 하던 차 아이들도 남매를 두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보니 모두 자기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하니 살가워 보이지를 않는다. 그녀가 깨끗한 옷에 화장
      끼가 있는 얼굴을 본적은 한번도 없다.그게 그녀의 운명인양 그저 그렇게 매일
      살고 있었다.   
      저 여인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끝끝내 그 의문은 풀지를 못했다.

      드디어 닭 한 마리를 잡아와서 큰 냄비에 물을 잔뜩 붓고 푹 끓였다.
      집에서 키우는 닭은 늙고 오래 커서 고기가 잘 안 익는단다.
      육추는 밤에도 불을 켜고 잠도 안 재우고 밤새도록 먹여 두세 달이면 출하를
      하니 고기가 아주 연해서 맛이 좋은데 집에서 키운 닭은 그렇지가 않단다.

      집에서 키운 기른 닭을 잡았다면 아이들이 먹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장에서
      다른 닭과 바꾸어 왔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무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나도 역시 생전에 닭들 생각이 나서 못 먹겠다.그때 그 닭국을 어찌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십중 팔구는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집에서 가족들이 사랑을 부어서 키운 가금 류는 먹을 일이 아니라는 좋은
      교훈을 얻었었다. 귀여운 사위에게 아끼는 씨암탉을 잡아 준다는 옛말은
      대단한 정의가 실린 행동이었던 것 같다.

      봄만 되면 떠오르는 아이들을 키울 때 있었던 이 병아리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은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옛날로 돌아 가 보게 한다.


                            07년 5월 4일 청초




                               ( 우리들의 꿈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