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묵은 접시 꽃씨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이 한가하기에 안방 정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간 아프던 허리도 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매일 아늑한 형광 스텐드 불 밑 이불 위에 엎드려서 읽으려고 손이 쉽게 닿게 머리맡에 놓아 둔 작은 간이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진 책들도 보기 좋게 좀 가지런히 잘 정돈하였다. 뜻밖에 빈종이 약 봉투에 고히 넣어서 겉봉에 굵은 매직펜으로 접시 꽃씨라 쓰여 진 것이 있는 게 아닌가...몇 년을 묵었을지 모를 접시 꽃씨가 함께 나온 것이다. 처음 이 곳에 이사를 왔을 무렵 언제인가 아파트 정원 빈자리에 이곳저곳 대강 흙을 파고 이 접시꽃을 열심히 심었었다. 여름이면 키가 큰 이 접시꽃이 새빨갛게 예쁜 색으로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나 오가며 보는 내 마음을 즐겁게 했었다. 그 후로 조경공사를 몇 번 할 때 까지만 해도 몇 해 동안 포기도 제법 벌고 꽃도 잘 피우며 살아 있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이 접시꽃들이 사라져 버리고 위용이 당당 관상목이 심겨 졌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 먼저 살던 우리 집 정원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다른 꽃들과 더불어 이 꽃이 예쁘게 피어났었다. 커가는 우리 세 아이들과 더불어 마당에 피어 있는 이 꽃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 시절을 보냈었던지... 누구나 어렸을 때 보았거나 추억이 담긴 꽃을 좋아 하게 마련이다. 몇 해 동안 잘 피었던 화려하지만 약간은 촌스럽기도 한 이 꽃에 이곳 주민들 가운데 애착을 갖은 이는 아무도 없었나 보다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 후로 이 꽃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나는 아파트 높은 층 우리 집 서 내려다 보면 마주 보이는 개울 건너편 둔덕에 다시 이 꽃씨를 심었디. 여름이면 약속이라도 꼭 지키려는 듯 몇년 동안 흰색과 빨간색 접시꽃이 나 좀 보 달라는 듯이 번갈아 가며 피어났었다. 이 꽃은 시인 도종환의 시 접시 꽃 당신으로 일약 유명해진 꽃이기도 하다. 누구도 모르게 심은 이 꽃을 혼자 내 마음속으로만 즐거운 회상을 하면서 감상하였었다. 물론 오가는 이들도 누군가가 심었겠지 하며 무심히 이 꽃을 보며 즐겼으리라. 그러나 이번 여름 갑자기 그 자리에 산책길을 내면서 인정사정없이 포크레인으 꽃은 뿌리 채 뽑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버려 허망하게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즈음 조경 꽃은 화훼 농가에서 한꺼번에 출하하는 것을 사다가 심는다. 꽃이 지기 무섭게 몽땅 뽑아 버리고 새롭게 핀 꽃을 다시 심고 지면 다시 심기를 반복한다. 이름도 모를 외국산 꽃이 온 군데 심겨지고 우리가 어렸울 때 보아왔던 분꽃 맨드 라미 봉숭아꽃은 한 옆으로 밀려 나서 귀한 문화재 모양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한 여름날 귀여운 채송화 꽃이 핀 광경은 요 근래 어디서도 보지를 못했다, 나 역시 마당이 있는 집을 버리고 떠나 덩그러니 허공에 뜬 아파트에 살게 되어 나만의 정원이 없다. 애써 심어 놓은 꽃들이 뽑혀 나가도 항의 한마디도 못하고 새의 둥지를 털리는 어미 새 모양 마음만 안타깝다. 접시꽃만 해도 숙근초(宿根草) 라 그냥 두면 다음해 봄에 새로이 싹이 돋고 몇 년을 두고두고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련만 요새 사람들은 뭉긋이 기다리고 참는 미덕은 찾아 볼 길이 없고 그저 당장 눈앞의 효과만을 즐긴다. 아무튼 내년 봄에는 뒤곁 산책길에 조금 이라도 빈 땅이 보이면 몇년을 묵어서 싹이 날지 어떨지 모를 이 접시 꽃씨를 아무도 모르게 다시 여기저기 심어 보려고 한다. 그 씨가 눈을 틔우고 잘 자라서 예쁜 접시꽃이 다시 피어나기를 나 홀로 지켜보련 나의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이 꽃 ! 지나는 이 들도 이 꽃을 보면서 잠시 위안을 받을 날들이 올 것을 기대하며 이 접 꽃씨를 책장 위에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보관해 두기로 했다. 07년 9월 9일 청초. (필자가 심었던 접시꽃) |

2007.09.09 11:03
해 묵은 접시 꽃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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