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하여 그렇게 유난히 무덥기만 하던 여름날, 뒤미처 제 멋대로 줄줄 쏟아지던 비 비 비.... 그래도 언젠가는 이 더위와 비가 끝이 나고 가을이 오겠지 하며 마음한편으로 은근히 기다리던 가을. 각도가 빗겨간 서늘한 햇살 아래로 서서히 가을이 으스스 찬바람을 몰고 그렇게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어인 일일까 가을이 오면 좀 살맛이 나겠지 하던 기대와는 달리 가까워진 겨울 추위를 생각하니 등골에 소름이 돋으면서 은근히 슬슬 겁이 난다 추위는 인간의 힘으로는 견디기 힘든 자연의 위협이다.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우리나라는 가을은 아주 짧고 바로 겨울로 갈것이라고 말들을 한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 몇년을 두고 꾸준히 자라 우거진 나무 밑을 지나노라니 이제는 나무 그림자의 음영이 제법 짙어졌다. 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도 쌀쌀하니 이렇게 올해의 가을은 우리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서 이제 우리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지하철 사람들의 옷 색상도 어느새 검정이나 갈색톤으로 짙어졌다. 오랜 세월 별렀을 샛노란 가을황국이 배시시 봉우리를 열고 예쁜 모습을 피워냈다. 한 여름날의 낭만인 봉숭아나 백일홍은 제 시절이 지난듯 꽃 모양이 처량하다. T.V.에서 임진왜란 때 묘령의 나이에 왜군에게 납치 되어가서 왜인에게 강제로 결혼을 당했다가 그 남편이 죽자 조선 땅이 보이는 산허리 절에 중이 되어 살던 여인은 죽은 후 그 해변에 묻혔다는 슬픈 역사를 들었다 묘지에 해마다 제를 지내는 그 후손들이 마련한 백일홍꽃 몇 송이가 쓸쓸히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고많은 꽃 중에 하필이면 왜 백일홍을 심었을까... 죽어서도 고향에서 보던 꽃을 그리니 예나 지금이나 백일홍은 우리의 국민 정서에 뗄수 없는 꽃이었구나 하는 애련(哀憐)함이 마음속에 맺힌다.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쌀쌀 해지니 갑자기 옛날 연탄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이맘때면 연탄광에 천오백장 정도의 연탄을 비축해야만 한 겨울을 날수 있었다. 위험한 연탄 가스와 연탄 갈아 넣기등에 주부들이 허리 펼 날이 없던 시절이었다. 연탄 불이 꺼지면 스스럼 없이 연탄 불씨도 서로 나누어 주던 이웃 친구..., 추운 겨울날 한 밤중에 연탄을 가는 일이란... 가족 중 누구든 정말 시베리아 유형이라도 떠나는 심정으로 단단히 채비를 차리고 각오를 해야만 되던 일이었다. 북한 지방에 해마다 여름이면 유난히 홍수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연료를 거의 산의 나무에 의존해서 벌거숭이산이 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이 연탄 덕분에 우리나라의 산은 울창한 숲을 그대로 유지 할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나는 골목길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었던 군고구마나 군밤의 구수한 내음이 또한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었다. 그것을 사가지고 식을새라 품에 안고 밤길에 아이들을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하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또한 따뜻해진다. 싸늘한 늦은 가을날 밤 옷깃을 여미고 종종 걸음으로 지나갈 때 골목을 환하게 비추면서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던 구멍가게 집 불빛과 어수룩한 풍경도 이제는 멀리 가 버렸다. 골목 모서리 그 구멍가게 영감은 한문 붓 글씨를 아주 잘 쓴다고 알려 졌었다. 그는 동네 통장 일을 성심을 다해 보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언제나 인사성이 아주 밝았다. 노상 골목길도 깨끗이 쓸어 놓곤 했었다. 그 아낙은 연탄 장사를 했는데 어찌도 새치롬한지 범접 못할 찬기운이 도는 여자였다. 내 비록 이렇게 연탄을 나르기는 하지만 나는 양반이로세 하는 오롯함이 있어보여 공연히 나도 몸을 사렸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 덕에 우리는 가스난방으로 고칠때까지 그에게 해마다 단골로 오랜 기간 연탄을 팔아 주곤 했었다. 이제는 그런 골목길도 없고 그러한 일로 사람들과 부딛칠 일도 없이 살게 되었다. 그 당시 대수럽지 않던 이런 옛스러운 풍경들이 새삼 생각나는걸 보면 나이 탓이런가. 아니면 모든것이 일시에 해결되는 이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게 된것의 반대급부로 감내 해야만될 댓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요즈음이다. 07년 10월 13일 청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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