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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하게 사는것이 좋은것 만은 아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계절이 되었다.
      오늘은 봄에 준비를 모두 해놓고도 몸이 안 좋아 미뤄 놓았던 막장을 담기로 했다.
      가을에 담가야 소금을 덜 넣어도 되니까 고추장류도 가을에 담구면 좋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 내가 직접쒀서 준비했던 메주 고추씨 엿기름 등을 가루로 마련하고
      굵은 천일염 소금은 볶아 놓고 물론 작은 항아리도 깨끗이 씼어 놓았다.

      여분으로 혹시나 해서 철사로 테를 맨 투박하게 좀 못생긴 충청도식 작은
      항아리를 씼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속이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결혼하고 처음 고추장을 담아 주셨던 항아리다. 사람은 죽어도 이런 것들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듯 예와 변함없이 여전하다.

      이 보리쌀 장을 쌈장으로 상추쌈도 싸서 먹고 된장찌개도 끓여 먹게 된다  .
      엄두가 안 나는 일을 우선 보리쌀부터 잘 씼어서 푹 퍼지게 삶기 시작했다.
      예전에 가마솥에 꽁보리밥을 해 먹던 시절의 그 밥이 연상되게 오랜 시간을
      뼈가 없도록 삶아야 된다. 그러다 보니 밑이 잔뜩 눌기도 하고 장을 만드는
      과정의 그 번거러움이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음을 새삼 실감한다.
      이래서 여자들이 장 담구기를 꺼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 쌈장을 담구는 방법은 예전에 앞집에 살던 경상도 친구한테 전수를 받았었다.
      그 친구는 그 후로 이일이 하도 번거러워 안해 먹었더니 방법을 잊었다며
      다시 나에게서 배워갔다.

      나는 장담구는데 들어 가는 모든 재료의 용량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어 놓아
      몇 년이 지나도 그 용량대로 섞어 넣고 보면 거의 요리 강습 받은것 처럼
      량(量)까지 틀림이 없이 훨씬 쉽게 완성 되곤 한다.

      몇 일전에 한결회에서 경기도 안성 지역으로 버스를 타고 깜짝 하루 여행을 갈
      기회를 가졌다.그 코스 중에 어떤 재래식 된장과 간장을 담구어 파는 대규모 농원을
      탐방하게 되었다.장 담구는 일 말고도 각종 장아찌 밑반찬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그전에는 하찮은 먹거리로 여기던 된장이나 간장이 암도 예방되고 몸에 이로운
      발효 식품으로 과학적으로 영양소가 규명되면서 무시 할수 없는 우리의 전통
      먹거리로 부각이 되었다. 예전에는 어쩔수 없을 때 먹는 찬거리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식품으로 오인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무리 멋쟁이라도 이 된장찌게를 먹는 일은 부끄럽고 구질구질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된장 찌게나 청국장이 맛이 있는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 가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도 불고하고 장을 담구는 일은 주부의 손을 떠나 이런 대규모
      장유업을 하는 이들의 손으로 자연스레 넘어 가 있었다.

      설명을 하는 자리에서 손수 장을 담구는 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을 든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한결회 모임의 년령층이 꽤 높은 편이라 모두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서열은 되었을텐데 이와 같이 모두 사먹는다면 우리 고유식품인 장 담구기는 이미
      전통을 이어가기 힘들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일순 당혹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무래도 집에서 직접 담아야 방부제나 인공 조미료도 넣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먹을텐데...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장담구기 뿐이랴 김장을 담구는 일도 이제 거의 가정주부의 손을 떠나 전문
      업자들 손으로 넘겨진것 같다. 어느 조사기관에서 알아 본바에 의하면 젊은
      여성의 삼십몇프로만이 김치를 담굴줄 안다는 결과가 나와서 전통이 깨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는걸 본적이 있다.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일어난 일대 산업혁명 같은 일이다.

      한때 집에서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벌린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 된다.
      실제로 장단지 하나도 없는 가정도 제법 있으리라는 추정도 된다.
      허나 과연 이런 일들이 잘 되기만 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가족의 건강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힘이 들어도 주부들이 직접 감당해야 될
      소중한 일이란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한편 나만이 이 고된일을 하면서 시대에 뒤쳐진 삶을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러나 내 손으로 담은 이 장으로 가족이 건강 할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평정시킨다.

                                           07년 10월 19일  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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