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숨을 쉰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입원실은 8 인용으로 들어 가시지요?" 우리가 노인임을 알고 의례히 경제가 어려우리라 짐작을 했는지 묻는 것이었다. " 2 인용실은 빈방이 없어서 좀 기다려야 되거든요" "예, 할수 없지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입원실의 실내온도가 어떨지...환자야 병원에서 주는 이불을 덮겠지만 보호자인 내가 쓸 얇은 이불과 담요 두장을 보자기에 싸고 갈아입을 속옷은 작은 여행용 가방에 넣었다. 그러나 행색은 영낙없는 시골에서 상경한 촌사람처럼 보인다. 이상하게 예전에는 자연스레 쓰던 보자기가 현대 시각으로 보면 어쩐지 좀 촌스럽다. 병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다행한 것은 침대마다 둘러친 커텐이 달려 있다. 남편의 한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으려고 종합병원에 왔다가 종합진단에서 신장 내과를 가 보아라 당뇨 기가 있으니 내분비내과를 가란다. 그도 그럭저럭 수술 싸인이 났는데 이번에는 심전도가 좀 이상하니 심장내과를 가 보란다. 남편의 초음파 검사를 하더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심장 조형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그간 수술 날자는 두 번이나 미루워지고 입원하던 날도 원래는 백내장 수술 예정일이었다. 그간 수도 없이 병원을 오가다 보니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나도 작년 여름 이래로 차차 건강이 기우는듯 하다. 환자도 그렇지만 보호자인 나는 집에서 입원시키러 보따리를 쌀 때부터 이미 그로키가 된 상태이다. 남편은 실제 아무 증상도 없이 건강하던 터였다. 입원실에 들자 커텐을 치고 우선 내가 환자 침대에 누워 버렸다. 커텐 밖에서 이미 입원실 환경에 적응하고 지내던 사람들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렸다. "저런 저 집은 환자를 제치고 보호자가 침대에 누웠네...나이롱 환자인가..ㅋㅋㅋ" 에그, 여럿이 있는 입원실의 단점이구나... 아무러면 어떠랴 커텐을 둘러치니 우선 옆 사람이 안보이니 괴롭지 않다. 이 방은 예비 환자들의 검사실인것 같다. 그러나 밤이 되니 문제가 달라졌다. 바로 옆 침대의 환자가 코에 산소마스크를 끼고 자면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는 소리가 확성기에 대고 내는 소리처럼 너무나 크게 들리는게 아닌가... 대각선에 있는 80대 노인은 밤새 잠을 안자고 40대 후반의 아들인 듯 한 사람이 밤새도록 일으켰다 앉혔다 하고 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말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들이 그 곳에 있었다. 두 번째 날이 밝았다.곱추는 아닌 것 같은데 상체의 체형이 좀 짧아 기형인 사람이 코에 산소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좋은 아침이지요^^ ?" 하니 미소로 답을 한다. 자면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는 소리가 조용한 밤이라 더 크게 들린 것이리라. 내 관심은 대각선상의 노인에게 쏠렸다. 그 아들인듯한 사람은 쉴새 없이 몸과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보다 못해 내가 "이제 그만 좀 쉬세요. 손마디가 아프지 않으세요?^^" 좀 있자 교대를 했는지 좀 빼빼 마른 닮은 얼굴의 아들이 오더니 또 새로 쉬트를 갈고 똑 같이 손바닥도 주물러 드리고 앉혀 드리고, "아버지 낮잠을 주무시지 말고 밤에 자도록 습관을 좀 고치세요." 오후가 되니 이번에는 얼굴형이 비슷힌 딸들인 듯 한 젊은 여자들이 둘이 와서 "아빠 ! 내가 누군줄 알지? 막내 딸이야. 어서 털고 일어나야지...." 별 반응이 없던 아버지는 딸의 손을 만지작 만지작... 그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식들을 무척 사랑을 해 주었나 보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교대를 하는지 "아빠 나 갈게, 알았으면 고개를 좀 끄덕여 봐" 그들이 떠나자 이번에는 손주가 교대로 왔다. 그들도 여전히 그들의 아버지나 고모가 했듯이 지성을 다 한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가 돈이 많은가?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 부모가 사랑으로 키운 결과로 이런 요새 보기 드문 효도를 받는게 아닐까. 아니면 똑 같은 DNA가 흘러서 그러한게 아닌가. 옛이야기에서 읽은 효자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요 근래 부모를 돌보지 않고 서로 미루고 유기한다는 기사만 읽어 온 터라 놀랍기만 하다. 이번 기회에 을지상륙작전 연습처럼 나의 세 아이들도 그들 못지 않게 아침 저녁으로 우리를 보살피는 실습을 해 내었다. 웃으운 것은 환자인 아버지 간호보다 보호자였던 나를 위해서 죽과 반찬을 만들어 날라야만 하게 된 경위다. 내가 신경이 너무 쓰인 남어지 병이 나버렸던 것이다. 산소 마스크를 끼고 매번 고된 숨을 쉬던 그 장애인의 모습도 잊을수가 없다. 한순간 한순간을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평소 아무런 생각없이 편안하게 쉬며 사는 이 숨쉬기가 바로 삶하고 직결되 있다는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이런 급박한 일을 격으므로 해서 매일 매일이 그저 지루하고 권태럽다고 생각하며 느끼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일상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던가를 깨닫게 한다. 모쪼록 병원에를 안 가도록 건강을 잘지키는게 최선이다. 이틀만에 퇴원을 하면서 병실의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쾌유를 비는 인사를 건네고 그 곳을 총총 빠져 나왔다. 07년 12월 14일 청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