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宮女)란 단어를 떠올리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이미지가 뭘까? 열에 아홉은 ‘왕의 여자’라는 말을 꺼낼 것이다.
“뭐 볼 거 있어? 하렘이잖아. 왕을 위한 기쁨조들이 궁녀 아니야?”
거의 대부분의 반응이 이럴 것이다. 분명 말하지만, 이건 오해다. 아무리 정력이 절륜한 왕이라도 궁 안에 있는 4, 5백 명의 궁녀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궁녀가 왕의 여자들이고, 그 중에서 운이 좋아 승은(承恩)을 입어 진짜 ‘왕의 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궁녀들은 그들의 실질적인 임무, 그러니까 ‘왕과 왕실가족들의 원활한 궁중생활을 위한 도우미’역할에 충실했다. 아니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고, 아무리 여자에 환장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궁녀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자에 정말 환장했던 왕도 후궁을 100명 이상 둘 수는 없었다. 법적으로 후궁제도를 정착시킨 태종도 후궁은 9명밖에 없었다(이 중에서 궁녀 출신을 따지면, 그 수는 더 적었다). 5백 명이나 되는 궁녀 숫자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로또확률 보다는 높다 하겠지만, 채 1%도 안 되는 확률에 인생을 걸고 덤비기에는 손해 보는 느낌일 것이다.
여기서 잠시 궁녀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녀는 강제로 끌려간 애들이다.” “입궁하기 전에 처녀검사를 한다.” “궁녀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는데, 뭐 대략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세밀히 파고들면 오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단 첫 번째 오해부터 풀어보자. 궁녀는 강제로 끌려간 애들일까? 아니다.
“갑순아… 미안하다. 애비가 능력이 없어서… 내가 딸을 파는구나.” “아부지. 왜 울어? 궁궐가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면서?” “그…그래 인생 뭐 있겠어? 배불리 먹으면 그게 장땡이지.”
보면 알겠지만, 당시 궁녀는 자유의사… 본인의 자유의지는 아니지만(궁녀로 입궁하는 나이가 어렸기에 주로 부모의 의사에 의해 입궁하게 된다), 어쨌든 자유에 의해 지원하는 구조였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이 궁녀로 자원한다고 다 궁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디보자, 궁녀로 자원입대… 아니 자원입궁 하시겠다구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비정규직 5백만 명 시대에 궁녀만한 직장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종신고용에 연금혜택, 절대 잘릴 일 없죠. 숙식제공에 운만 좀 따라주면, 나중에 이 나라를 이끌 왕자의 생모가 될지도 모르는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언제쯤 애를 보내면 될까요?” “아이구, 이 아저씨 급하신가 보네. 급해도 지켜야 할 절차는 따라야죠.” “예?” “에또, 그래설라무네… 아저씨가 좀 준비해야 할 서류가 있거든요?” “궁녀는 그냥 자원하면 입대, 아니 입궁하는 것 아닙니까?” “이 아저씨 큰일 날 사람이네? 청와대 직원 뽑는데, 신원조회 안하는 거 봤어요? 사람 뽑아놨더니만, 덜컥 칼 들고 덤벼들어봐. 이건 사람 하나 죽고 사는 게 아니라 나라가 뒤집어 지는 일이야.” “그… 그렇군요.” “그러니까, 아저씨 일가친척의 신원증명이 필요하거든요? 조상 중에 역적이나 도둑놈은 없다는 증빙서류랑, 아저씨랑 아저씨네 가계에 몹쓸 병이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건강증명서류 좀 뽑아오슈.” “저기, 건강증명은 왜?” “이 아저씨 참 답답하네, 당신 딸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전하가 갑자기 취향이 이상해져서 당신 딸이랑 눈이 맞았다 칩시다. 그렇게 해서 왕자라도 낳았다 칩시다. 그 왕자가 왕 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당신 딸이 몹쓸 유전병에 걸려 있고, 그 유전병이 왕자한테까지 이어지면… 그건 안 되잖아.”
그랬다. 당시 궁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신원증명과 건강증명 등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지만 궁궐 문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10년에 한번 열리는 궁궐 문을 위해(보통 궁녀는 10년에 한번씩 뽑았다) 궁녀 지원자들은 이 모든 절차를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절차를 통과한 궁녀예비후보들이 입궁을 하게 되면, 숫처녀 검사를 받게 된다. 여기에도 나름 규칙이 있는데,
“10세 이하는 처녀로 간주하고 통과하고, 10세 이상만 처녀막 검사한다. 모두 팔 내밀어!”
10세 이하의 여자애들은 ‘검사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적어도 어린이 성추행과 같은 파렴치한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성추행범도 양심은 있어 10살 이상인 애들만 건드렸다는 것일까? 어쨌든 10살 이상인 궁녀예비후보들은 팔목에 앵무새 피를 묻혀 묻으면 처녀, 안 묻으면 처녀가 아닌 것으로 감별했다. 이런 절차로 입궁하게 된 궁녀예비후보들은 견습내인 생활을 보내다, 15년이 지난 뒤에 관례를 치르게 된다. 일종의 성인식인 관례에서 궁녀들은 신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왕의 여자이기에 궁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라고, 신랑 없는 혼인을 시켰던 것이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궁녀들은 평생 왕만 바라보고 살다가 쓸쓸히 죽어야만 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궁녀들에게도 남자들이 있었다면? 아니 남자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남자들이 끝없이 꼬였다면? 금단의 열매… 궁녀들에게 덤벼들었던 남자들의 이야기는 다음회로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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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탈없이 입장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 초기 야화 "世宗(세종)을 엿먹인 궁녀들의 스캔들"을
올렸는데 대선배님들께 조심스러움도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시리즈로 올릴
생각인데 어떠하신지요?
쪽지로 下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