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돌 사진* 청초 나의 작은 아들 손녀의 돌날 이야기다.그 아들은 멀리 전주에 떨어져 산다. 원래 돌날은 지났지만 돌쟁이 아빠인 그가 바쁜 바람에 다른 날을 택해서 치르기로 했다. 게다가 그들이 지난 정초 전주로 이사를 한 집들이도 겸해 서울서 내려와 우리가족 모두가 모였다. 돌쟁이는 나의 작은 아들의 두번 째 아이다. 큰 손주 때에는 돌잔치 대행업체에 의뢰해서 했었다. 그때에는 아이 아빠가 제 친구들도 많이 초대하고 거창하게 치루었었다. 하지만 두번째 아이는 조촐하게 집에서 돌상을 차려 주기로 했다. 아들이 하는 일이 바쁘기도 하여 차일피일 망설이는 것을 설득 하였다. 나의 딸도 둘째이다.옛날 우리는 결혼 한지 삼년 안에 집을 사게 되었다.그때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를 해 주지 못 하였다. 딸이 철이 든 다음 가족 사진들을 보다가 어째서 제 돌사진만 없다고 아주 섭섭해 하였다. 그러니 너도 그리 되지 말라고 아들에게 권유를 했다. 흰설기에 무지개색 돌떡과 꿀떡도 만들어 푸짐하게 커다란 접씨에 쌓아 올려 놓았다. 총천연색 사진이 되도록 수박 참외 사과, 이파리가 달린 이국적인 파인 애풀까지 올려 놓으니 근사한 돌상이 차려졌다. 연필, 노트, 배추색인 만원권 돈, 컴퓨터마우스. 마이크. 쌀. 명이 길라고 무명실 타레도 잘 집히도록 아이 손 바로 앞에 늘어 놓았다. 연필 노트 돈 실 쌀 한 주발 (먹을 복 많으라고)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웬 컴퓨터 마우스와 마이크는 올려 놓을까? 아기보다 다섯살 위인 손자가 그도 어린 아이인지라 장난스럽게 마이크를 냉큼 집어 들고 저 만치 달아난다. 아이 엄마가 매번 쫓아가 빼았어서 그연히 그걸 돌상 위에 올려 놓곤 한다. 할머니인 나로서는 이해가 안간다. 돌상에 웬 마이크... 아이 어미인 며느리 말로는 아나운서나 컴퓨터도 잘 하는 작가가 되라는 의미란다. 우리 때에는 어찌 했더라... 정말 세상이 많이도 달라졌다. 감기가 들어 머리가 따끈한데다 저만 처다 보는 낯선 얼굴들에 둘러 쌓여 낯가림도 하는듯 좀 보채는 돌쟁이를 우선 재워 보기로 했다. 돌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이다. 한잠을 늘어지게 자고 난 돌쟁이는 느긎하게 깨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기다리던 어른들이 이 때다 싶어 돌쟁이 손녀 아이를 갖은 풍악을 떨어서 아슬아슬 웃겨가며 돌사진을 찍는다. 돌쟁이는 갑자기 흥미가 생기는지 낯가림도 잊고 맹열하게 돌상에 다가섰다. 가족들은 이걸 집어라 저걸 집어라 난리들이다.각자 바램을 담은 물건을 흔들며 아기의 혼을 뺀다. 돌쟁이는 우선 색갈이 알록 달록한 연필을 집고 돈도 집었다. (공부도 잘 하고 돈 걱정 없이 부자로도 잘 살겠네...) 실을 잡도록 “이걸 집어 어여 ...” 유도 해서 목걸이 처럼 실타레를 목에 걸어도 주었다. (우선 명이 길어야제...) 제가끔 준비한 돌 축하금을 상에 올려 놓아 주었다. 한돈짜리 돌 반지도 가운데 손가락에 끼어 주니 갑자기 어린 아기가 어른 처럼 보이는게 아닌가... 분당 집으로 돌아 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진이 궁금하여 카메라를 열었다. 아뿔사, 나의 카메라에 돌날 찍은 사진은 한장도 나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후레쉬도 잘 터지고 잘 작동을 했었는데...디카카메라 칩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순간 멋진 돌사진을 남기려고 시도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애 스치고 지나간다. 아이 아빠의 사진기는 손자가 망가트렸다며 그날 찍지를 못 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전문 사진사를 부를걸 그랬다. 부랴부랴 함께 사진을 찍었던 큰 아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거기 사진은 동영상을 비롯 모든 사진이 잘 나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이제 손녀의 돌사진은 평생 남기게 되었다. (2편) *우애* 벼루던 돌상받이 행사는 이제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맛있는 저녁 상을 차려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즐거운 식사도 했다. 이번에는 멀리 전주까지 왔으니 다 함께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정 했던 것이었다. 밤중에 아들이 가까운 농수산 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 회를 떠다가 대접을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잔 술을 마시게 되었다. 우선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맥주에 소주를 조금 타니 아주 산뜻하고 가벼운 술이 되었다. 나의 자녀들은 웬간해서는 술을 안 마신다. 다른 때는 모이면 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철저히 금해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술이 한잔씩 들어가니 서로 슬슬 웃기는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가 더욱 화기 애애하다. 이래서 술들을 마시나 보다.... 보통은 가족이 모이면 주사(酒邪)가 있는 사람이 섞이게 마련이어서 술주정을 하거나 시비가 벌어지기 십상인걸로 알고 있다.생시에 먹은 마음이 취중에 나온다 하였던가. 나의 세 아이들은 학벌에서나 사회적 기여도도 비슷하여 서로 콤프렉스가 없다. 큰 아들 작은 아들 모두 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고 사위도 프랑스유학을 하여 박사학위를 획득한 학구파로 모 대학에서 겸임 교수로 재직중이다. 평소 품은 불만들을 술기운을 빌어서 털어 놔서 그리 되는걸로 알고 있다. 나의 아들들과 딸 사위는 술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취했다.그러자 주인이 배정해 놓은 잠자리에 다들 조용히 들어 가니 마음이 편안하다. 하룻 밤을 자고 나니 부엌에서 여자들이 힘이 들어서 점심은 사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작은 아들의 직장인 모 대학교를 방문하였다. 우선 그 넓은 캠퍼스의 규모에 놀랐다.서울대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아들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붙은 교수 연구실 방을 들러 보고는 열심히 하라고 가족 모두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 전주의 동물원을 참관 하였다. 생각보다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로서아산 불곰은 T.V.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것 보다 상상외로 커서 놀랐다. 맹금류 새우리에 있는 독수리도 날개를 펴니 내 두팔을 벌린 크기는 되는듯 하다. 더운 날씨와 구경꾼에 치어선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인도산 호랑이, 좁은 우리 속에서 서로 핥아주며 외로움도 달래고 애정을 과시하는 바둑무늬의 표범 한쌍. 등을 구경하였다. 마치 일본의 우에노 공원 같은 분위기다. 화창한 날씨에 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속에 온 가족들, 손자들을 거느리고 거닐다 보니 모처럼 나도 도루 아이가 된듯 기분이 들뜬다. 저녁은 全州하면 전통한국 고유의 맛의 고장이라 한정식을 하기로 하였다. 여러 가지 음식중에 홍어를 삭힌것이라나 나는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이다. 역씨 오손도손 화기 애애한 분위기.나는 참으로 마음이 기뻤다. 나의 아이들은 모여도 누구도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투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 없이 잘 배려하는 모습들이 고맙다. 분당 집에 돌아와서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생각을 해 보았다. 부모인 우리의 마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아이들 형제끼리 화목하게 잘 지나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08년 4월 28일 청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