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지 꽃

by 이용분 posted May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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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지 꽃

    어느 새 새봄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 모양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집
    뒷쪽에 있는 초등학교 담장 위에 피어난 새 하얀 찔례꽃들이 시들어 버렸다.
    무얼하며 지내느라고 그랬는지 잠시 눈길을 주지 못한 사이에....

    집으로 돌아 가는 경사진 길몫 한옆에 벽돌로 쌓아 네모 나게 만들고 흙을
    채워 넣은 조금 높은 간이 화단이 있다.
    그 곳에 몇 사람의 여인들이 우루루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 있다.
    도대체 무얼 하나 쳐다 보았다. 한 옆에 감독인가 싶은 중년의 남자의 지휘
    아래 그 곳에 새로이 꽃을 갈아 심는 중이었다. 아니 이 꽃이라면 올 봄에
    새로 심은 팬지 종류의 꽃으로 미처 사랑 땜도 못한 꽃이었는데....

    이번 봄에 심은 꽃이 그 곳에 피어 있느니 하며 생각하는 사이 찔레꽃 마찬가
    지로 이번에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꾸어 내어 버린다. 어인 일일까 미처 묻기도
    전에 이미 뽑혀서 한 옆에 치워 놓인 채 시들은 그 꽃들이 애처럽게만 느껴진다.

    “아저씨,이 꽃은 버리실건가요? 버리는 거라면 좀 갖어다 집에 심고 보려고요.^^ ”
    “예, 다른데 쓸 겁니다.”  
    하릴없이 저만치 가려는데 그 사람이 나를 부른다.
    “몇개 필요 하신가요?” 나는 다가가서 얼른
    “ 두어개 주시면 되요.“
    ”그럼 골라 가 보세요.“꽃을 드려다 보니 까만 비닐화분에서 뽑아 냈던 그대로이다.
    씨앗을 심을 때의 흙이 바싹 마른 채 돌처럼 딱딱하게 뭉쳐서 붙어 있다. 실 뿌리도
    미처 뻗어 보지 못한채 그대로 줄기만 길게 웃 자랐다. 이래서 바꾸던 참 인가....

    조심스레 고르다 보니 가녀린 줄기가 한심하여 집에 가면 제대로 살기나 할는지...?
    원래 팬지꽃 줄기는 연하고 약하다. 게다가 뽑아 낼적에 잡아 당긴 탓인지 간들간들
    줄기가 딱딱한 흙덩이에 겨우 매달려 있다. 다른 데 갖어다 쓴다 하니 함부로 고를수도
    없고. 그래도 이왕에 말을 꺼내 버렸으니 용기를 내어 다시
    “아저씨 한 뿌리만 더 갖어 가면 안될까요? 어째 시원찮은게 살것 같지가 않군요...^^ ”
    했더니 이번에는 자기 스스로
    “이게 예쁘네요“ 하면서 알록 달록한 다른 것을 하나 더 꼴라 준다.
    “우리 남편이 꽃을 무척 좋아해서... 이제 집에서 소일삼아 꽃을 열심히 키우거든요.^^

    고맙기도 하고 갑자기 겸연쩍기도 해서 이렇게 수인사를 건네고 맨 뿌리가 들어난
    꽃을 그대로 들고 황급히 온다. 마치 어항의 고기를 옮길 때 잠시라도 물을 떠나면
    그 고기가 금새 죽기라도 할까봐 조바심 하듯이....

    집에 있는 비좁은 스트로폼 상자를 비집고 한 옆에 겨우 입실을 시켰다.
    그 곳에는 이미 작년에 피어서 시들은 별꽃 뿌리를 버리지 않고 흙이 담긴 스트로폼
    상자에 심어서 겨우내 잘 간수 했더니 진분홍색 별꽃들이 총총이 곱게 피어 있다.
    화분에서와는 달리 맨땅에서 처럼 가지를 뻗으며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낸다.
    분홍색 사이에 보라색과 알록 달록한 보라색 팬지가 섞이니 배색이 예쁘다.

    이 꽃은 일년초일까? 몇년이라도 사는 숙근초(宿根草)일까?
    요즈음은 꽃밭에서 꽃씨를 받아 심고 키우는 세월이 아니니 꽃의 성질을 알수가 없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도자기 항아리에 꽂혀 있는 흑장미색 연분홍색 흰색의 프라스틱
    장미꽃은 물도 안주고 몇 년이 가도 시들지도 않고 고운 색과 모양을 그냥 지니고 있다.

    비록 장미처럼 아름답지도 않은 가녀린 꽃이지만 생명을 지닌 것이기에 십중 팔구는
    버려질 듯 싶었던 몇 포기의 꽃을 구제한 기분이다. 꽃을 키우는 농민들이 추운 겨울
    비싼 기름을 때서 실내 온도를 마추면서 애지중지 자기아기 보살피듯이 키웠을 꽃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쳐 다 피워 보지도 못하고 그냥 마구 파서 버려진다면 그 정성도
    아깝고 우리들이 낸 세금도 너무나 아깝다.(그래서 뒷 탈이라도 생길까 봐 그 사람이
    다른 데 쓴다고 한건 아닐까... 그럴려면은 그냥 거기서 피도록 곱게 둘 일이지 왜
    비싼 인건비를 들여 가며 옮긴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갑자기 생긴다. )
    오월의 밝은 햇살을 받으며 그 가녀린 꽃이 별꽃처럼 잘 피어 나기를 마음으로 염원
    해 본다.

                                          08년 5월 어느날 청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