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국 칼럼] 관련 핫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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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또 폭로를 했다.
이번은 새 정부에 들어간 인사들이다.
지난 대선 직전에도 비슷한 폭로가 있었다.
삼성특검도 그들의 폭로가 발단이 되었다.
모두 한 뿌리인데 쪼개어 발표를 하고 있다.
하늘의 일을 한다는 사제들이 벌이는 일인지라
함부로 시비할 수가 없다.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이니 더욱 그렇다.
더욱이 사제단의 일에 시비를 거는 것은
곧 삼성을 감싼다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으니
누구도 나서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삼성의 잘못은 잘못이고 사제단의 문제는
사제단의 문제다. 사제단이라 하여 성역을 누릴 수만은 없다.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유신을 반대하던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는 것을 계기로
결성된 사제들의 단체다.
그 시절 이 단체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다.
87년 박종철 고문사건 폭로에도 역할을 했다.
누구도 나서지 못하던 시절에 사제들이 몸을 던졌다.
그래서 존경을 받았다.
세월이 지나며 사제단의 활동도 변화했다.
사제단의 홈페이지에 기록된 대표적 활동을 보면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양의 평양 방문,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단식기도,
언론개혁, 새만금 개펄 살리기 삼보일배,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 기자회견,
김현희 KAL기 폭파 진상 규명,
반전 평화미사….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 이념적
갈등을 몰아온 사안들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지난해 11월 신도와
사제들을 향한 두 번째 교황회칙에서
교회의 현실참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피흘리는 사회혁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바라바(빌라도가 예수를 체포한 대신 놓아준 사람)같이
정치적 해방을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입니다."
그는 해방신학에 대해서도 다른 기회에 이렇게 비판했다.
“우리에게 해방신학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교의 신학입니다.
” 기독교의 핵심은 희생이라는 말이다.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와 함께
‘희생 없는 종교’를 세상을 망치는 7가지 사회적
대죄 중 하나라고 꼽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요즘 활동은 과연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사제단의 어떤 간부는 지난 정권 시절 이사장이니,
위원장이니 하면서 세상 권력을 누렸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과 용서, 그리고 평화다.
사제단이 지금 벌이는 행동은 이 세상에 평화를 심기 위함인가,
아니면 분열과 갈등, 그리고 증오를 심기 위한 것인가.
사제단은 마치 핍박받는 의인 한 사람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있는 듯 행동한다.
사제들의 눈에는 삼성에서 기백억을 받았던 그가 의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사제들은 왜 폭로 대상이 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랑과 연민이 없는가.
누구든 재판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혐의의 확인도 없이, 증거도 제시치 않고
당사자들의 이름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성직자는 법을 안 지켜도 되는가. 과거사 규명이 그렇듯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진실은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면 왜곡된다.
그런데 사제단은 왜 꼭 선거를 앞두고서 기획폭로를 하는 것일까.
과연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근대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종교와 정치는 분리됐다.이 세상 일은 국가가, 하늘의 일은 종교가 맡았다. 물론 종교가 현실문제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현실정치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종교는 희생을 무릅쓰고 나서는 것이다.
단 힘없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 압제 당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기독교가 일제 때 3·1운동에 참여한 것도,
유신 때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사제단이 나서지 않으면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정도로
억압의 나라, 불의의 나라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 나라는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칭찬받는 나라다.
시대가 바뀌었다.
사제들이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정의를 외치지 않아도,
우리가 쌓아 온 민주 제도로서 나라를 운영할 수준은 되었다.
사제단은 이 나라의 제도와 법을 믿고 모든 증거를 특검에 보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다.이제 사제들은 땅의 정의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늘의 평화를 알려주는 사도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
‘정의구현’ 사제단이 ‘평화구현’ 사제단으로 변화할 날을 기다려 본다.문창극 주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