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돗배

by 미강 posted May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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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은 11회 선배님작품







"검은 돗배" 를 부른
Amalia Rodrigues 의 생전모습






1920년 6월 23일 포르투갈 리스본 태생
1939년 (19세) 프로 가수 데뷔
1944년 (24세) 첫 해외 공연 (브라질)
1954년 (34세) 프랑스 Olympia 극장을 통해 첫 프랑스 무대 데뷔
1989년 (69세) 프랑스 쟈끄 시라크 수상, 아말리아에게
황금 문화 메달 수여.
1999년 (79세) 10월 6일 리스본에서 사망



1920년 6월 23일 포루투칼 리스본에서 태어나서
1999년 79살에, 고향인 포루투칼 리스본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포루투칼의  
파두를 전세계에 알린 아티스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하면 생각나는 음악이
바로 '바르코 네그로(검은 돛배)'라는 곡이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Fado)는  
슬픈 운명의 음악이다.

파두의 어원은 숙명과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됐고
파투의 밑 바탕에 드리운 Saudade 는


우리의 '한'(恨)과 유사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정서다.

더욱 기구한 것은 40여년간 포르투갈을 암흑으로 몰아넣은

살라자르 독재정권의 우민화 정책에
파두가 이용 됐다는 사실 .

파두 축구는 성모 마리아가 현신 했다는
카톨릭 성지 파타마와 함께 3f정책의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파두를
훨씬 극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 .

1974.4. 25일 , 폴튜갈 라디오 방송에서는
금지곡이던 파두뮤지션주제  
아폰수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이것을 신호로 청년 장교단은 수도 리스본에 진입 했다

시민들은 혁명군에게 환영의 표로 카네이션을 던져 주었는데

이것이 무혈명예혁명인 카네이션 혁명이다 .


결국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장려된 파두가 그
정권을 무너뜨린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음악적으로 파두에는 과거 550년간 폴튜갈을 지배한
무어인( 북 아프리카의 아랍계 혼혈인종)의
영향으로 아랍 색채가강하게배어있다 .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노예들의 음악과,

브라질 유학생들의 음악(아프리카 계통)이 뒤섞인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1920-1999.10.6일 )는
파두를 예술의 경지로 격상시킨 주인공이자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창법에 세계는 경의를 표했고 ,
세상을 따났을때 폴튜갈전체가 슬픔에잠겨 국장으로 치렀다.

무대에서 항상 입었던 검은옷은
그녀의 상징이자 전통이 되었다 .
                                                          

지금도 파두 여성 싱어들은 자주 검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제2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평가는 최상의 영예로 여긴다.  




저는 이 음악을 들을때 슬픈감은 있었지만
막상
혁명을 일으키는 신호로 까지이르른 사연은 전혀모르고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거진 몇년을 이음악을 만났을때 꺼내려고하면
열어 놓은곳이 없었습니다 .

무척이나 오래전 음악인데 이것도
저작권 침해로 막아 놓은것이라니 참 답답 했습니다 .

어제도 조선 블럭에 같은 자리에가서
한번 눌러보니 이게 왼 일인지요 .
잠시 무단 복제를 풀었습니다 .
너무도 급하여 음악 따오고 글도 따오고
참 운이 좋았습니다 .

함께 감상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