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더운거에요? 이 차는 에어콘도 안 켰나” 느닷없이 옆에 서 있던 50대 초반쯤 된 여인이 불평어린 말을 토로한다. 바로 옆에 서서 가던 나는 그 녀가 누구엔가 얘기를 하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게 나라는걸 눈치 채고는 좀 성가시기는 했지만 무거운 입을 열었다. “요새 기름값이 하 비싸니 모든 사람들이 차를 두고 지하철로 모인 모양이에요. 사람 체온이 36도5부니 더울 수 밖에요.” 그때 시간이 평일 한시를 좀 넘었는데 전 같으면 승객이 적어서 빈 자리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좀 다르다. 마치 출근 시간대 처럼 서는 역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더 타서 점점 복잡해 진다. 차가 늦게 와서 그런가... 그전 이라면 당연히 앉아서 편하게 갔겠지만 오늘 따라 서서 가기가 힘에 겹다. 나는 허리가 좀 아픈터라 지하철 경로석 앞 통로 입구 모서리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때 난데 없이 좀 비썩 마른 남자 노인이 돌아 서더니 불쑥 한 마디 거둔다. “불평을 하지 맙시다. 다 고마운 일이에요. 이렇게 살수 있는 것만으로도...” 느닷없이 ”너 밥먹었니?“ (내심 깜짝! 나보고 그러나? 어인 반말이람?) 그러더니 그 노인이 잠시 숨을 고른후 말을 계속한다. “이렇게 우리 예전에는 먹고 살기도 힘이 들어서 그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간에 노상 진지 잡수셨어요.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만 됬던 세월이 엊그제 같습니다.“ 맞는 이야기다. 우리만큼 난리를 제일 많이 겪은 세대도 드물 것이다. 일제 때 B 29가 폭격을 온다하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책 가방 싸들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 오기도 수차례 했다. 그 때가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이었던것 같다. 아버지가 집밖 빈터에 기다랗고 큰 구덩이를 팠다. 굵고 긴 나무 토막으로 얼기 설기 엮어 구덩이 위에 올려 놓았다. 가마니를 덮고 파낸 흙을 도루 거기에 퍼 올려 고루 펴고 삽으로 다져서 방공호를 만들어 놓았다. 한 옆에 들고 나는 구멍도 만들어서 마치 두꺼비 집 같이 되었다. 눅눅한 기운이 도는 그 방공호 속에 호기심에 들어가 몇번인가 숨어 보기도 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옷장을 앞쪽으로 조금 끌어 내었다. 그리고는 그 뒤에 쌀가마니를 감추는 것이었다.그시절 어린 나는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한참 훗날 그게 일제의 식량 약탈에 대비 하셨던것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귀한 달걀을 먹기 위해서 집에서 닭 몇 마리를 키웠다. 닭의 모이는 지금 처럼 사료를 사서 먹이는게 아니었다. 할머니가 기차역 근처 곡물 하치장에 가서 떨어진 낙곡을 빗자루로 쓸어 모아 가져다 키우곤 했다. 어른들만이 참여 했지만 일제 강점기 반상회에서 일제히 모여 한줄로 서서 지붕위에 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바께스로 불끄기 운동을 했던 정경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다 T.V.화면에서 일본인들은 지금도 지진대비 훈련이 철저한 걸 보면 그런 교육을 우리에게도 강요했던것 같다는 생각이 제절로 든다. 그 후로 겪은 6.25 사변때 고생한 이야기는 거론하기 조차도 괴롭다. 풍요러운 시대에 태어난 지금의 젊은이들도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백여서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레파토리 일것이다. 알 필요도 없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릴것이니. 잠시 그럴테지 조금 있으면 제 차를 몰고 다니던 편한 습관은 버리기 힘들것이다. 기름 값이 언제까지 얼마 만큼 더 비싸질지는 모른다.하지만 만성이 되어서 다시 자가용 차들을 끌고 다니겠지. 언제나 그러 했듯이... 그들은 우리세대 처럼 생생하고 처절한 체험이 없다. 해서 가난이라는게 얼마나 힘 겹고 무서운 재앙인가를 마치 꿈속의 일 처럼 실감이 안날 터이니까. 08년 5월 22일 청초. (씀바귀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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