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능에서)
한컵 가득 담은 우유를 전자렌지에 넣고 따끈하게 데웠다. 담백한 우유에 달콤한 카스테라 한 조각을 들고 맛을 음미하며 새삼스럽게 이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가 좋지 않으면 무얼 먹고 싶어도 먹을수가 없는 그 순간이 제일 불행하게 느껴진다. 아침 나절 근처 C 종합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받고 돌아 온 길이다. 상세한 결과는 몇일 있어야 알게 되겠지만 검사를 한 담당의사의 말로는 상태가 염려를 안해도 된다고 한다. 어제 저녁 식사 후 빈그릇을 치우다 식당 카펫트 위에서 발뒷굼치에 무언가가 밟히면서 뜨끔하고 아프다. 당장 한쪽발을 절룩대면서 이를 뽑기 위해 스텐드 밝은 빛 아래 한참을 드려다 보아도 어둑침침한 눈으로는 도통 잘 보이지 않는다. 살 색갈의 생선가시 조각을 찾아서 겨우 뽑아내었다. 요런 5미리 정도의 조그마한 가시에 찔려도 이렇게 아프니 오늘 하기로 한 내시경 검사가 은근히 겁이 났었다. 이른 아침 예약된 시간에 대기 위해 부랴부랴 병원 접수대에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때 마침 옆의 접수 창구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담당 접수직원을 향해 일방적으로 무슨 불평인지 거의 멱살잡이라도 하려는 듯이 큰 소리로 퍼 붓는다. 순간 성질을 못이겨서 접수대 위에 그가 포켙에서 신분증, 카드등을 꺼내서 확 늘어 놓고 난리다.창구 직원은 예의상 참는건지 무언가를 잘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무던히도 참고 있다. 잠깐 사이지만 나는 옆에서 듣기에 너무 불쾌하고 불안하다. 여기가 무슨 시장 안 싸움판인줄 아는가...시간이 빠듯한 나는 그냥 그곳을 떠났다. 문득 우리 집안 간 사촌 남동생 생각이 났다. 오래전 내가 학생시절 방학때 잠깐씩 본 광경이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던 그 남동생은 무언가 떼를 쓸일이 있으면 맨 흙바닥에 대굴대굴 구르면서 빡빡 소리지르며 울어 대는 것이다 .있는대로 심줄이 돋은 얼굴에는 땀이 범벅이 되고 그위에 흙이 묻으니 모양 새가 영 말이 아니다.일곱명 형제 중에 막내라 그랬었는지... (그후 백모께서 동생을 하나 더 낳는 통에 막내를 면했다.) 아무튼 옆에서 보노라면 진땀이 바짝바짝 나던 생각이 난다. 형제가 많은 중 그래도 그 동생은 어려운 환경속에 직장을 다니면서 고학을 하다 싶이 대학을 나왔다. 모 대기업에 들어가서 승승장구 승진을 하면서 잘 풀리는가 싶었는데 5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아이 셋을 남겨 놓은채 그만 아깝게도 요절을 하고 말았다. 성격은 대강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정해지는 것 같다. 그의 형제들은 충청도 기질로 성격들도 느긋하고 원만해서인지 그리 단명하지는 않았다. 생각하면 그런 불처럼 팔팔한 성격으로 해서 일은 야무지게 잘 했겠지만 또한 그 성격으로 인해 자기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대개 성격이 급하고 격한 사람이 거의 단명한 것 같다. 화제가 엇길로 나갔다. 접수를 끝내고 검사실로 찾아 갔다. 필요한 요식 검사를 책크 한후 조금 기다리니 키가 크고 수수하게 생긴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한다. 친절하게도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검사대기실로 데려 갔다. 필요한 설명도 친절 한다.나는 그 녀가 내 손을 잡는 순간 마술에 빠진것 처럼 그의 친절에 기분이 뿅 갔다.지금까지 무수한 병원에서 수많은 검사를 해 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그 일이 위안이 되어 괴로움이 훨씬 덜 한것 같았다.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남편의 말을 들으니 그 간호사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들의 팔짱을 끼거나 등을 감싸 안고 데려 가더라고 한다. 오늘 화를 버럭버럭 내는 어떤 사람과 너무나 친절한 간호사의 극한적인 대비를 보았다. 화를 내는 사람의 氣는 주변의 모든사람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한편 친절한 사람의 배려가 모든이들의 마음 속에 평안함과 위로를 주고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느꼈다. 병원이라는 곳은 아픈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 들이 만나는 장소다. 아무리 아파서 가더라도 기절을 하지않은 이상 남에게 불안을 주는 행동은 절대 삼가해야 된다.더군다나 그 사람은 아픈사람이 아니고 보호자인것 같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다급한 순간에 내민 따뜻한 손길, 마치 구원의 손길과도 같은 이런 일이 심리적으로 아주 약한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약이 되는 지를 의료진들이 알게 된다면 이와 같은 선행들은 어떤 치료보다 우선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08년 6월 10일 청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