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뻐지 열매 )
이제는 제법 우거진 아파트 숲길로 걷는데 순간 싱그러운 바람이 앞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간지른다. 어느새 유월이다. 올 일 년의 반은 거의 지나 간 셈이다. 지나간 봄날 개천 변 오솔길에 화려하게 피었던 벚나무에 까만 버찌가 많이도 열렸다. 까만색으로 아주 익은 것 붉은색으로 설익은 것 아직 덜 익어 노란 것.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이런 것들을 입술이 새까맣도록 따먹고 간식을 대신했다. 그러나 모든 게 풍족한 요즈음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손을 놓고 혼자 해 봐야 늘지...." "그러면 나 넘어져도 돼 ? " "아니지 네가 넘어지면 할아버지 울지." 푹신한 우레탄이 깔린 보도 위를 천천히 굴려 가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탄 여덟 살 정도의 손녀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이다. 언제 보아도 이렇게 가족이 어울리는 풍경은 아름답다. 언제부터인가 노인은 가족에게서 소외 되어서 노인정이나 공원에서 홀로 있거나 노인들끼리만 어울려서 할일 없이 무료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런 화면만 보아 오던 터에 이렇게 정다운 광경을 보니 저런 게 바로 모두가 바라던 노후가 아닌가 .... 모든 게 선진국을 쫓아가다 보니 안 좋은 것부터 받아 들여서 거의 모든 가정이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서 따로 살게 되었다. 그 여파로 짓고 또 지어도 주택난은 끝이 나지를 않는다. 외국의 경우는 일찍부터 국가에서 미리미리 준비해서 너나없이 완벽하고 소외감 없는 노후를 맞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들의 겉모습만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 젊고 능력 있을 때에는 자식 키우는데 전력투구한 지금의 노인 세대는 거의 노후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국가에서 따로 히 노인들의 복지를 준비 해준 것도 없는데 황망히 노후를 맞이했다. 2차대전과 6.25를 몸소 격고 보릿고개를 넘어 쑥을 잔뜩 넣고 만든 개떡을 쪄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60년대의 어려운 시대를 젊음 하나로 용케 살아 넘긴 지금의 실버세대들.... 시부모를 열심히 모셨지만 막상 자신은 소외당하고 양보 해 버린 맨 처음 세대.... 가다 오다 T.V.에 비치는 화면의 독거노인들의 실태는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누구나 닥쳐 올 노후이건만 그들만의 일인 양 철저하게 외면당한 채 쓸쓸하게 노후를 보내는 그들이 딱하기만 하다. 젊은 아이들의 희희낙락 기로움이 없이 즐거운 반면 뒷 그늘에 묻혀서 외로운 세월을 보내는 노인들을 보면서 크고 작게 우리나라가 잘 살아 갈수 있도록 젊은 날 아낌없이 기여했던 그들의 수고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벚나무 밑에 떨어진 까만 열매를 몇 개 주워다가 물에 씼어서 입안에 넣고 그 맛을 음미를 해 본다. 달 큰 씁쓰름한 맛이 옛 기억을 일깨운다. 허나 이제 더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 내 입맛도 옛날과 달리 변했나 보다. 그때 그 시절과 달리 계절도 잊고 쏟아져 나오는 풍족한 과일들..... 이제 벚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젖치고 장대를 들고 그 작은 열매를 탐하는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 지난 날 가난했던 시절, 가슴 아리고 씁쓰름했던 시절을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생각해 볼수 도 없는 일일 터이니까 ... 07년 6월 7일 08년 6월 |

2008.06.16 23:50
벚나무 뻐지가 익는 유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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