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벌써 장마가 끝이 났노라 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시도 때도 없이 호우가 쏟아진다. 그러나 이제 아침저녁으로 사이사이 한줄기 찬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한 여름 할일 없이 날라 다니다가 아파트 방충망에 붙어서라도 기승으로 울던 매미도 이제는 조용하다. 앞으로 절기는 가을을 향해 달려 갈 모양이다. 오랜 비 끝이라 우리 아파트 뒷 결에 있는 냇물에 물 흐르는 양이 많아져서 제법 높은 층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도 냇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리곤 한다. 오늘 탄천을 걷다 보니 큰 빗물이 쓸 켜 내려간 시냇가의 풀 들이 진흙을 뒤집어 쓴 채 물이 흘러간 방향으로 머리 결 모양 모두 누워있다. 문득 어린시절 나의 바로 밑의 두 살 아래 남동생과 비가 온 뒤 개울에 고기를 잡으러갔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주신 헌 대나무 소쿠리를 가지고 동생과 같이 개울로 고기를 잡으러 가서 물이 흐르는 아랫 쪽을 소쿠리로 막고는 윗 쪽 물속에 잠긴 풀숲을 한쪽발로 쿡쿡 흝으면서 몰면 붕어 미꾸라지 등이 잡히면 즐거운 마음으로 의기양양 하여.....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이 병에 가득히 넣어 가지고서~~~ 랄 랄라 온 다야 ! )^^ 그러다가 장난으로 배 모양 띄워 본 동생의 고무신발 한 짝이 급한 물살에 떠내려가 버려서 어린 마음에 동동동,,. 어찌 하나 한참 걱정에 휩 쌓였던 기억까지도 지금에 와서 보니 아련한 동화 속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 참고로: 그 당시는 해방 전 일제 강점 말기, 2차대전 전쟁으로 물자가 아주 귀한 시절이라 <게다> 라고 하여 나무로 만든 나막신을 신던 시절이라 고무신은 아주 귀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집에 와서 어린 붕어나 송사리들을 물병에 넣고, 좁은 물병 안에서 나를 처다 보고는 눈을 띠륵띠륵 거리면서 활발하게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 대는 고기들을 눈앞에 가깝게 드려다 보면서 즐거워했던 추억도 아름답다. 그러나 성질이 급한 어린 붕어들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금새 죽어 버리고 버들치라는 고기만이 오래 살아 있곤 했는데 이 물고기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물고기인지 한 겨울에도 어름 사이에 끼어서도 잘 살아 있는 어종이다. 잠자리 잡으러 다니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는다. 장마 끝에 잠간 햇볕이 나면 넓은 들판을 요리저리 사람을 피해가며 빠르게 날던 보리 잠자리 떼들... 이 잠자리는 몸이 좀 탁한 오랜지 색이다. 지붕 끝에 매달린 거미줄을 둥굴게 만든 철사에 여러 겹 입혀서 만든 잠자리채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어렵게 잡은 잠자리를 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끼워서 전리품 인양 들고 와서는 책상 서랍이나 상자 안에 넣어두면 하루 밤만 자고 나서 보면 산 것은 몇 마리 안 남았다. 물론 남동생과 같이 잡은 이 잠자리들.... 그때 내 나이 아홉~ 열 살 때 일이다.. 益蟲인 그들을 왜 그렇게 많이 잡아다 애꿎은 목숨 버리게 했을까....? 이 나이에,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눈망울도 크고 몸집도 큰 왕잠자리, 일명< 말잠자리 > 인 그 녀석들은 마치 지금의 파랑색 육군 헬리콥터 같은 생김이다. 이 잠자리는 주로 연못이나 물가에 많이 날라 다니는데 거의 쌍쌍이 붙어서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혼자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잡으려면 숫 잠자리를 잡아서 실에 발을 묶고 잠자리 배에 호박꽃 술에 붙어있는 노란색 꽃가루를 문지르면 영낙없이 연한 배추 색 암 잠자리 같이 보여서, 날리면 숫 잠자리가 암 잠자리로 착각하고 와서는"사사삭" 날개 부딛히는 소리를 내고 붙여 가지고 달아나려고 하다 잡히곤 한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나는 남동생 따라 남자들이 하는 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던 것 같다.그 시절에는 무슨 걱정이 있었을까 ?..... 그 시절이 나에게는 아늑한 요람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날씨는 제법 시원하다. 초봄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던 시절 봄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어느 듯 가을의 전령인 귀뚜라미가 제 먼저 알고 울어 대기 시작했다. 냇가 풀숲 속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하는 귀뚜라미가 좀 야속하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가을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사실 이번 여름은 더울 사이도 없이 비만 오다가 한 여름이 모두 가버렸다. 우리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쉬지도 않고 밤낮없이 흐르는 시냇물 따라 너무나 빠르게 가버린 무심한 세월을 무엇으로 잡을꼬... 2003년 8월 31일 씀 08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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