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사이에 날씨는 몰라보게 변했다. 지구의 온난화의 결과인가.... 영원할 듯 지루하게 덥던 여름날이 끝을 내릴 모양이다. 아이들의 짓궂인 장난은 정말 말릴 수가 없다. 며칠 전 초등학교 교정을 지나며 동영상을 찍었던 허수아비들이 오늘 보니 거의 망가지고 부서져 있다. 제일 예쁘던 노랑머리 허수아비의 가발은 벗겨져 걸려 있고 다른 것들도 허리가 꺾어지고 옷은 다 벗겨져 삐뚤어져 있고....보는 순간 나는 아연 실색을 했다. 비가 내리면 옷도 젖고 모두 망가져 버리겠구나 하고 지례 걱정을 했었는데.... 어느 해인가 그 학교 교정에는 면화나무를 심은 적이 있었다. 면화 꽃은 연미색 분홍색 흰색으로 꽃이 잠자리 날개 처럼 참으로 여리고 곱게 핀다. 이제 가을이면 근래에는 보기 힘들어진 까만 껍질 속에 봉긋이 터져 나올 흰 목화솜 구경을 하겠구나 하고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열릴 줄 알았던 면화는 끝내 맺지를 않았다. 학교 관리인의 말이 꽃이 피면 아이들이 모두 다 따버려서 면화가 여물 새가 없다고 한다. 언제인가 찍었던 수세미가 잘 크고 있나 드려다 보니 어린 수세미는 뜯겨져 오간데 없고 줄기는 시들어서 말라있다. 이도 어린아이들의 짓일 것이다. 가을에 수세미가 영글어서 주렁주렁 열린 모양을 사진으로 남기려던 내 작은 소망은 그만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호기심이 가득 들어 있나? 아니면 심술주머니가 가득 한 건가. 흥부와 놀부전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보면 놀부가 어렸을 적에 나오는 성질을 보면, 똥 누는 아이 똥 위에 주저 앉히기, 애 호박에 말뚝 박기 등의 성격 묘사가 나온다. 이도 그 옛날 어느 작가가 지은 이야기니 그 시절 아이들도 심술궂은 아이는 그랬나 보다. 나에게는 친정 남 조카가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인가 천방지축이었던 그 아이는 고모 집인 우리 집에 제 부모와 함께 놀러오면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해야 빠른 시간 안에 망가트릴까 하고 생각하는지 어쩐지 ... 어떻든 무엇이든지 저지르고 본다. 지금도 쓰고 있는 책장에 그 애가 매직펜으로 쓴 굵은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때를 생각하고 어이없는 미소를 짓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애의 별명을 '벼락' 이라고 지어 주었다. 오랜만에 왔다고 애써 진수성찬을 차려 주면 맛있고 영양 있는 음식은 다 마다 하고 기어 이 라면을 끓여 달란다. 그러면 할 수없이 끓여 주어야 만 되었다. 여름철이라 때 마침 마당에는 지붕 처마 끝에 줄을 매달고 심은 넝쿨 콩 줄기에 새빨간 꽃이 예쁘게 조랑조랑 피어 있었다. 꽃도 예쁘지만 가을이면 콩 열매도 큼직하게 열고 맛도 좋은 콩이라 애써 구해서 심은 것인데..... 그런데 이 녀석은 놀러 오자마자 말릴 사이도 없이 막대기를 마구 휘 들러서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던 꽃줄기가 한순간에 무참히 망가져 내려 버리는 게 아닌가. 이렇게 참담하게 망쳐 버리다니 .... 마음은 쓰렸지만 오랜만에 놀러 온 아이인 지라 무어라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 조카는 예절 바르게 잘 커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지방공무원으로 의젓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다. 아이들의 이런 습관은 커가는 중에 겪게 되는 한 과정 인 모양이다. 오늘도 그 초등학교 교정에는 3층 지붕 끝에 매달린 줄에 넝쿨 콩이 주렁주렁 열린 채 드높은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잘 영글어 가고 있다. 모든 어린이들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잘 잘 못을 깨닫게도 되어 고른 인격이 형성 되는게 아닐까 .... 지금에서야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넉넉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한다. 08년 9월 28일 |

2008.09.28 14:14
현대판 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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