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 안희선

by 김 혁 posted Dec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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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나기 / 안희선 - 겨울의 추위에도 얼지 않을 한 마음을 생각해 보면, 나에겐 속죄(贖罪)해야 할 명백한 옹졸함이 있다 언제나 고집하는 낡은 수법의 신상명세(身上明細)를 바라본다 때로, 그것은 맥 빠진 자동인형(自動人形)을 연상케 한다 남루한 혈관 속에서 영혼을 황폐케 하는, 신경을 부식(腐蝕)케 하는, 그래서 나이 먹은 분별(分別)로도 어쩔 수 없는 이 공소(空疎)한 피를 모조리 흘려 버려야 할 것을 좀 더 진지하고 무서운 생명이 그립다 날지 못하는 새에 있어 날개는 의미가 아니듯, 믿었던 정열도 기실, 서투른 기지(機智)의 얼룩진 모습에 불과한 것 결국, 산다는 것은 묵묵히 견디어 가는 것 그런 인내는 종말을 방관하는, 이 찰나(刹那)의 시대에도 신용카드처럼 유효하다 그러나, 현실에 순응(順應)하는 서러움이란 또 얼마나 헛헛한 영혼의 일인가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안이한 속박이 두렵다 경사(傾斜)진 인간의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시간의 수레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고요가 그립다 텅 빈 허공이 그립다 덧없이 쌓인 지난 가을의 낙엽이 추억을 만드는 동안, 잠시 그 낙엽이 되고 싶다 그래도 무심(無心)한 바람은 겨울이다 마음이 춥지 않은 자(者)들만 살아 남을 것이다 인간의 세상처럼 어두운 저녁에 눈이 내린다 지독한 북극(北極)을 향하여 사람들이 걷는다 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