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다가 올 딸의 생일에 때 맞추어 전주에 사는 작은 아들이 올라 왔다. 방학이라 소프트웨어컴퓨터 강의를 듣기 위해 올라 왔다고 한다. 의무적인 건 아닌데 다음 학기에 자기의 제자들에게 최신 분야를 가르치기 위해 적지 않은 수강료를 자비로 쓰며 스스로 마음을 먹고 왔다고 한다.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엄마 방에 들어 왔다가 스치듯 나가려는 아들을 붙잡고 "여기 좀 앉아 보아라." 나는 머리도 쓰다듬어 보고 널찍한 등어리도 손으로 쓸어 내려 보고... 아직도 머리 결은 어린 시절처럼 제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머리카락이 굵고 까만 큰 아들과 달리 이 애는 여자의 머리 결처럼 부드럽다. 나를 닮아 약간의 갈색머리카락이다. 어렸을 적에는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그 당시 신개발 지역이었던 화곡동 일대를 들로 산으로 제 마음대로 뛰어 다니면서 야생마처럼 컸다. 하도 신이 자주 닳아 똑같은 문수의 만화슈즈를 한 여름에 몇 켤레를 다시 사 주어야만 했다. 새 바지는 채 한번도 세탁하기도 전에 무릎에 구멍이 나 버리고... 햇볕에 바래서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카락이었다. 머리 꼭지 가운데 머리카락 몇 가락이 닭벼슬처럼 항상 쭈뼛이 서서 마치 인디안 소년처럼 보였었다. 물론 얼굴이 햇볕에 그울린데다 뺨도 빨간 홍옥처럼 빨갛게 얼었다. 겨울에도 노상 밖에 나가 놀며 장난이 심해서 손등이 항상 터서 피가 나고 까맣게 딱지가 앉고 하던 손이다. 그는 이곳 작은 골목대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매끈한 게 선비의 손이다. 오랜만에 올라오니 끝에 날은 만남의 날로 정한 모양이다. 낮에 만나서 점심을 함께 할 친구가 따로 있고. 밤에는 얘의 상경 날에 맞추어 잡아 놓은 Kist 연구 진과의 망년회 회식이 있다고 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가는 아이에게 Kist가 있는 홍능에서 분당까지는 끝에서 끝, 아주 먼 거리다. 적어도 11시30분까지는 선능에서 막차를 타야 되니 일찍 떠나라고 신신당부 일러 두었다. 최근 내가 늦게 다녀 본적이 없어 어림 잡아 그리 말을 하였다. 내가 요즈음 몸도 많이 아프고 잡다한 일로 그만 그 애의 일은 깜박 잊고 있다가 밤 10시 45분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은 떠나서 오고 있으려니 하고... 그러나 전화 속에서 들려 오는 정경이 예사롭지 않다. 웅성웅성 하니... (나중에 알고 보니 노래방이었다나...) 아직도 안 떠났는데 이제 가려고 한다고 ... 시간을 보니 11시에 가깝다. 이거 야단 났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거니 1호선을 탔는데 11시 30분 선능역 까지는 못 갈것 같단다. " 형 집에 가서 잘까?" " 그래 그러려므나" 큰 아들 집에 전화를 거니 맞벌이인 그 애들은 피곤해서 벌써 자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얼른 지하철 노선도를 꺼내놓고 보니 신도림역에서도 까치산역 막차를 타기도 힘들 것 같다. 다시 작은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너 지금 어디니?" "종로 3가에요" " 펏덕 내려서 5호선을 타거라. 빨리 빨리, 김포공항 쪽으로 가는 걸 타거던 전화를 하거라. 탔다고... " 궁금하여 다시 전화를 건다. "어떻게 하고 있니?" "지금 5호선을 타러 걸어 가고 있어요 '헉헉헉' (숨이 가쁜 소리...) 그때 시각이 11시 36분 종점에서 이곳 종로3가 까지는 지하철이 오는 거리가 있으니 타기는 타겠구나... 전화가 없다. 막차를 탔는지 어쨌는지 궁금한데... 다시 전화를 건다. "어찌 됐니?" "탔어요. 엄니." " 전철안에서 잠 자면 안돼" 아무래도 제 차를 안 몰고 갔으니 십중팔구 몇잔 술을 마셨을 게 틀림없다. 늦은 시간 텅텅 빈차 안에서 잠이라도 들면 어쩌나... 이제 그게 걱정이다. 다시 전화를 건다. " 잠들면 안돼. 내릴 무렵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께" 다행히 아이는 잠은 안 들고 무사히 형의 집 가까운 까치산 역에 내렸다. " 어떻게 하고 있니? " "걸어가고 있어요. 근데 비가 내리네..." "'쯧쯧쯧' 택시라도 탈 일이지" 나 혼자 중얼거려 본다. 얼마나 비를 맞았는지... 다 컸거나 어리거나 자기 자식을 가졌다는 것은 고통과 즐거움의 극치이다. 그 시각 큰 아들 내외는 자다말고 깜짝 일어나서 기다리고, 큰 며느리는 시동생이 온다고 느닷없이 이곳저곳 집안 정리, 화장실 청소에 부엌 청소까지 하느라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 그 여담을 그 다음 날 딸의 생일모임에서 들을수 있었다. 08년 12월 끝자락에... |

2009.01.10 09:03
한 밤중의 007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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