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시인의 찻집 '歸天'에서                                                                                                                  청초 선농수필문우회 모임에서 생각지도 않은 틈이 생겼다. 여자회원들 간에 좀 색 다른 프로그램을 갖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선 점심을 먹고 바로 옆에 헐리우드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감상하기로 했다. 이왕에 간 김에 인사동 문화의 거리도 함께 거닐어 보기도 하고...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어찌 찾아갈지 잘 몰라서 지나는 남자 어르신께 물었다. 한 사람에게서 듣고 한 발자국을 막 떼려는 데 여기저기서 귀 기우려 듣고 있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이 골목 계단으로 올라 가세요” 하고 친절히 일러준다. 여기가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파고다 공원이 근처가 아니던가. 그들은 바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창일 때 우리도 한 세월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안가 본 곳이라 찾아 가려니 그곳 지리가 영 낯설다. 전에 아이들을 키울때 악기를 사러 몇번 찾은 적이 있어 낙원 상가는  생각이 나는 데 파고다 공원이 헐리우드극장 가는 골목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게 어째 영 생소하다. 바라다 보이는 파고다 공원...역사적으로 수많은 애환을 안고 할 말이 많은 곳이다. 이제 그 많던 노인들도 오간데 없고 너무나 고즈넉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어느 때 부터 이 곳이 노인 무상출입금지구역이 되었단 말인가... 나 하고는 제목부터 취향이 먼 '로큰롤 뮤지칼' 영화에 한참을 졸며 보며 끝이 났다. 극장 화장실은 의외로 깨끗하다. 칸칸이 큼지막한 화장지 두루마리가 걸려 있다. 따뜻하게 켜 있는 전기 온풍기가 한겨울 추운 날씨에 언 마음과 몸을 녹게 한다. 지하철역에서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배고픈 시절을 살아 온 우리 세대에게는 쌀독에 쌀이 그득한 것처럼 이런 사소한 게 몸에 와 닿는 큰 행복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살게 되었나 보구나... 요즈음 경기가 불황이라 다시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어쩌나 슬슬 염려가 생기기 시작한다. 기대했던 맛에는 좀 미치지 못했지만 순두부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바로 앞에 '歸天'이라는 다방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차 값이 만만찮을 텐데...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로 하자며 잠시 망서리는 우리 일행을 자기가 약속 시간에 늦어서 미안했다며 스스로 긎이 차를 사겠다는 인심 후한 후배님 청에 이끌려 그 곳엘 찾아 들었다. 우리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기도 했지만 그 찻집에 대한 강한 호기심 반으로 못 이기는 체 그만 그리들 하였다. 문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우리에게 귀에 익은 천상병시인의 부인이 운영한 다는 찻집이다. 생전에 기인이었던 그의 일화들이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인이다. 높은 건물 일층 한옆에 자리 잡은 두평 남짓한 크기의 공간은 다방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나 조붓하다. 찻집 문을 열자 반갑게 우리를 마지 하는 천상병시인의 부인은 옛 사람치고 라도 아주 자그마한 키에 동굴 납작한 인상이다. 생전에는 성치 않은 시인 남편을 거두고 뒷바라지하며 생활을 짊어져야만 했던 그 부인의 후덕함이 엿 보이는 듯 무던해 보인다. 우리는 따끈한 대추차와 모과차를 시켜 마셨다. 그의 생전 일면식은커녕 언듯 스쳐보지도 못했었던 한 시인의 향기가 어디엔가 배어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 거리고 코를 쫑긋거리며 그의 자취를 한참 더듬었다. 그러나 헐려서 새로 지은 상가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됐다는 네 귀가 반듯한 세맨트 구조물 어느 곳에서도 그의 발자취를 찾을 길은 없다. 우리 일행은 그러려니 생각은 했었다. 비록 허름했을지는 몰라도 막상 원래의 모습 그대로의 옛 자취들이 아닌게 너무나 아쉬웠다. 한참 전 어느 땐가 책에 어디서 천상병시인의 부인이 경영하는 비좁고 보잘 것 없는 찻집에 그를 아끼는 몇몇 문인들이 이따금씩 찾아와서 팔아주는 몇 잔의 차값이 그날그날의 생활의 터전이라는 것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벽에 걸린 몇 장의 사진과 전보다는 조금은 더 늙었을 그 부인만이 예가 그 곳이라는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천상병 시인이 살아 있는 부인을 끌어안은 채 그 녀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생전에 못 갚고 떠난 아내에 대한 큰 빚을 그녀가 살아 있는 한은 영원히 책임을 지겠다는 듯이...                                          2009년 1월                                           여기에 천상병 시인의 시를 몇편 소개하고자 한다. 귀천(歸天)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들국화 산등성 외따른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1970년 6월 70년 추일(秋日)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차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를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시 자료는 네이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