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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년전 (2007년 8월 5일) 에, 지금은 없어진
동창 일석의 Home Page 에 올렸던 글입니다.





25년전 쯤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두딸이 고등학교, 중학교를 다닐때 였죠.
남의 나라에 와서 산다는게 무척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걸 보면서 그들의
뒷바라지에 모든것을 걸고
내 자신의 일들은 뒤로 미루고 열심히 일했기에, 이만하면
안정된 생활이라고 마음 뿌듯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어느날 예상보다 일찍 일이 끝나서 집에 들어섰는데…….
아래층에서 전화 통화를 하시던 시어머님께서
내가 들어왔는줄 모르시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 대상이 놀랍게도 나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아들이 뼈가 부러지도록 돈을 벌어 오지만 여편네(나)가
씀씀이가 세어서 아들이 불쌍하다는군요.

난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고,
슬픔을 감당 할수가 없었죠. 노트를 찢어서 남편에게
편지를 썼어요.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때쯤은 난 이미 이곳을 아주
떠나버린 뒤입니다. 찾지마세요.
아이들을 잘 돌봐 주세요.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앞도 잘 안보였지만,
편지를 침대위에 남겨두고 보따리를  싸들고 차안에서
펑펑 울면서 목적도 없이 어딘가로 달렸습니다.

나의 남편은 한번도 자신의 옷을 산다거나, 양말은 커녕
구두도 내가 사주어야 되고
시장을 보는 일도 철저히 나 혼자 하기때문에
나 혼자 돈을 다 쓴다고 오해를 하신듯 싶었습니다.
나도 그 당시에 남편만큼 벌었기때문에 이런 오해를 어머님이
하고 계신줄 몰랐고, 그냥 섭섭한 마음 때문에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막상 달리다 언젠가 남편의 친구 부인과
멋진 곳에 가서 점심을 먹고, 근사한 옷가게, 구두가게에서
그 친구가 돈을 펑펑 쓰면서 “돈도 벌겠다 좀 써라”(그녀의 남편은
그 당시에 돈 잘버는 의사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해도 우물대며
“다음에 살께” 하고 나온적이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 났습니다.

나는 방향을 돌려 그 유명하고 근사한 옷가게,구두 가게를 들려 주섬주섬
맘에 드는걸 골라 카드로 지불하고 차에 올라타고 계산을 해보니
$3000.00 도 넘었어요. ( 그때 돈 가치는 지금에 3배도 넘었을꺼에요)
나 혼자 나를 위해서 이만한 금액을 쓴적이 없어서 조금은 후회도
되고 겁도 났지요.

저녁 먹을 시간도 꽤 넘어서 배는 고파 오는데…….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Y 한테 갈까 생각를 해보니 밤에 혼자 운전길이
겁도 나서 우선 호텔에 묵으려고 차에서 내려 안을 들여다보니 혼자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차안에서 새벽 1시를 맞았습니다.

11월 중순이라 밤은 쌀쌀해 지는데 갈곳이 없네요.
배도 너무 고프니 입만 타고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죠.
죽어 버릴까 생각도 했습니다. 어릴적에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무엇이던지 할수 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내 귀를 자꾸 울렸어요.( 제가 고등학교때 남자 같았던 여자
체육 선생님 한테 미움을 사서 매도 많이 맞았고 죽고 싶었을때,
이 사실을 아시게된 교장 선생님이 구해 주시고 해주셨던 말씀입니다)

슬슬 집 방향으로 차를 몰고가서 집 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집을 바라보니 온 집안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데 새벽 2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부엌과 거실의 불이 꺼지는걸 보면서 차를 세워둔체 물건들을 갖고
살금살금 차고 뒷문으로 들어와 물건을 잔디깍는 트랙터 밑에
감추어놓고 남편 차에 들어 앉았지만 온 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고
마음까지 떨려서 살그머니 집안으로 들어섰는데…..모두 잠 든줄
알았는데 남편은 깨어 있다가 너무 반가워서 눈물까지 글썽거렸죠.

자초지종 이야기는 미루고 그냥 마음이 울적해져서 그래 봤다고
했죠. 그도 더 묻지도 않았고, 절대로 앞으론 이런 일 않기로
남편에게 맹세를 했습니다.

얼마를 지나서 집을 뛰쳐나갔던 날 사들인 물건들을 보여 주었고
다시 되돌려 주겠다 해도 남편은 그냥 갖으라 해서 모든일이
수월하게 끝난 나의 짧은 시간의 가출 이였지만, 아이들도 모르고
지냈다가 요즘 이 사실을 알고 배가 아프도록 웃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날 큰 딸애가 카드를 사서 보내 왔는데, 엄마가
괴나리봇짐을 막대기 끼어 어깨에 매고 집을 떠나는 그림이
그려 있었는데, “엄마 도망 가지 않고 우릴 길러 주셔서고마워요”라고
썻더라고요. 나의 미국친구들도 가끔은 엄마자리에서 도망 가고
싶을때가 있었다고들 그럽니다.

그렇게나 나를 사사건건 못 마땅해 하시던 시어머님도 지금은
이 세상에서 “자식은 너 하나 밖에 없는것같다”고 하실 정도가
된것은 모두 가족의 화목을 위해 헌신한 남편의 덕으로 알게
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나의 부모님이 홀 시어머니
외아들 이라고 완강히 반대 하시며, 3개월안에 이혼하고 보따리 싸들고
집에 올꺼라 했지만,  잘 버텨서 할머니 까지 되었으니 내 고집이
부모님이 틀렸다는걸 보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 ?
    김 혁 2009.02.05 08:32

    지난 일이지만 진솔하게 기술 해 주시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좋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무사히 귀가하셨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젊은 날의 좋은 추억으로 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미강 2009.02.05 11:05
    현세님 ! 글을 이야기하듯 물흐르듯 잘도 쓰셨어요 .
    대충 이삼년전에 저도 집을 나간다고 문을 꽝 닫고
    나가는데 날 붙잡지도 않아요 . 붙잡으면 더 펄펄 뛰니깐두루
    안 붙잡는거에요 .그래도 붙잡으면 죽겠다고
    이 손 놓으라고 악도 쓰며 으시대야하는데 안잡아요 .
    사방이 캄캄한데도 불구하고
    부릉하고 발동을 걸어도 안 내다봐요 ,
    차를몰고 갈데가 없어 바로 앞에 마켓 광장에서
    파킹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데 으찜 그리도 지루 한지요 .
    체면상 한시간을 간신히 채우고 집에오니
    그래도 모르는척 . 잠자고 일러나 아침 차려주니
    어흠. 반찬 맛있네 . 킁 정말 치사하다 .
    현세님 글 잘읽었어요 . 다음을 기대합니다 .
  • ?
    이용분 2009.02.05 17:39
    김현새 후배님.
    지금 까지 어느분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살면서
    겪는 아픔이나 고통을 쓴 분이 없었어요.

    66년에 이민을 갔다면 43년이 넘어 가는 데
    아직도 이렇게 우리 글을 차질없이 멋있게 구사하시는 걸 보니
    대단하십니다. 보통 집안 에서 일어나는 트러불에 대헤서는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제 우리의 나이가 이런 경지를 넘어서게 되었나 봅니다.
    재미있는 글 읽으면서 마음놓고 웃게 되어서 기쁩니다.ㅎㅎㅎ
    따님이 그렸다는 개나리 봇짐을 멘 후배님 그림이 좀 보고 싶네요.

    이 자리를 빌어 미강님께도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분 후배님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들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
    미강 2009.02.06 10:13
    이용분 선배님 , 좋은 글은 꼬박 꼬박 잘읽고있지요 .
    죄송스럽게도 제가 새해 인사를 받으니
    죄송합니다 .
    새해에 복 많이 받으셔요 .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