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혼신의 힘을 다 해서 키우고 교육을 시킨다. 어느 날 식당가에서 우연히 건너 편 테이불에서 연년생인지 고만고만해 보이는 두 아기를 데리고 밥을 먹이는 젊은 엄마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올 동안 그 엄마와 아기가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그 젊은 엄마의 그 정성스런 보살핌이다. 비빔밥인 듯한 밥에서 우선 위에 놓인 야채를 한옆으로 걷어 내더니 하나는 맨 밥으로 다른 하나는 야채를 섞어 비벼 색깔 나는 비빔밥으로 만든다. 그리고 덜어서 각각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 구분을 한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냥 비벼서 같은 수저로 먹이면 쉬울 것 같은 데... 이상한건 큰 아이를 맨 밥으로 작은 아이는 색깔 나는 비빔밥이다. 게다가 각각 다른 수저로 바꿔 가면서 매번 뜨거울 가봐 입으로 호호 불어서 아주 사랑스런 눈길로 드려다 보면서 차례차례 정성 것 입에 넣어준다. 동물의 왕국에서 맹금류인 어미 독수리가 먹이를 잡아다가 제 새끼에게 고기 점을 입에 맞도록 잘게 뜯어서 먹여 주는 광경과 너무 흡사하다. 새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보살핌을 요하는지를 느끼게 했다. 그녀는 30세인데 두 아이는 18개월의 차이가 나는 형제란다. 큰아이는 맨 밥을, 작은 아이는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한다. 야무져 보이는 그 젊은 엄마는 "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하고 말을 한다. 이제 우리 나이에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은 다 커 버렸고 손자나 손녀를 거느렸다. 봄이 왔다고 며칠 동안 갑자기 열심히 걷기운동을 한 후유증인지 나는 허리가 아프고 다시 건강이 시원찮다. 그 중에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밥맛이 없어진 것이 더 괴로운 일이다. 내가 왜 이러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운 어미인지라 도저히 떨어져 살수는 없을 것만 같았던 내 생명 같은 아이들이 이 순간 곁에 없다는 상실감이 말할 수 없이 마음을 허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 전주에 사는 작은 아이의 6살 난 손자 녀석이다. "그래, 건우니? 할머니는 건우를 마니마니 사랑하는데... 너도 할머니 사랑해^^?" " 예~~건우도 할머니 마니마니 사랑해요.~~~" 아직 어려서 별로 마땅히 할말도 따로 없으니 우선 사랑을 심어 주기 위해서 노상 하는 말이다.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많은 사랑을 해 줘야 그 아이도 큰 후에 남을 사랑하게 됨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춥지 않느냐? 하는 나의 물음에 "날씨가 아주 푹해요. 아빠하고 슈퍼 나왔어요.“ 숨 가쁘게 단숨에 말을 해 버린다. 제법이다. 날씨가 푹하다는 표현까지 하다니... 자리에 누워서 허전함과 괴로움 속에 꿈속을 헤매 이듯 하고 있던 터였다. 몽롱한 의식 중 손자의 한 통의 이 전화가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마음속에 새로운 기운을 솟게 한다.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헤매는 영혼을 붙잡는 소리다. 이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혀 짧은 소리로 친 할머니인 나를 노상 “부~당 할머니·~~~" 하고 부르곤 했다. 아마도 외할머니와 구별하느라 그러는 모양이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분당이라는 머리말은 떼어 버린 것이다. 제 아빠가 매번 전화를 걸어 바꿔 주는 거겠지... 목청을 돋워서 마치 햇병아리 군인이 구령을 연호하듯 큰 소리로 귀속이 얼얼 하도록 "할머니~~~" 이제 손자의 그 청량한 부름소리가 나를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삶의 의미를 되 살려주는 것 같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된다. 이제 이 어린 손자가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 된 것이다. 09년 2월 9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