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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종합병원 안과에서다. 큰 아들이 바쁜 시간 짬을 내어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눈이 안좋은 나는 3개월 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간다. 이번에는 시력 검사 시야검사 시신경 검사 등...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다. 돈도 많이 든다. 나중에 보니 검사비용만으로 3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었다. 여러가지 검사를 한데다 감기 기운에 힘도 부쳐 입안이 바짝 마른다. 조금 있으면 나를 부를 차례다. 물이 먼데 있어서 함께 간 남편에게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 모금이면 족할텐데 물이 좀 많았다. 주변에 쓰레기 통도 없고 화분도 없다. 다 마실수도 없고 버릴 곳이 마땅치 않다. 남편의 자리는 멀어 알지를 못한다. 일회용 물 종이봉지에 남은 물을 든채 쩔쩔 매는 나를 보고 있던 앞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눈치 빠르게 자기가 버려 주겠다며 선듯 받아들고 어디론가 버리러 간다. 순간 나는 너무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 그지없다.그녀는 자기 남편의 보호자로 왔는데 환자가 오면 매번 자리를 양보하여 참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떤 60대쯤 되어 보이는 허름한 남자 환자가 자기 차례를 확인 하려는 듯 커다란 확대경으로 벽에 붙여놓은 환자 명부를 바짝 들이 대고 드려다 보더니 바로 그 여인이 양보한 자리인 내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순간 얼마나 눈이 나쁘냐고 누군가가 물었다. 대답이 모르겠단다. 같은 고통을 안고 왔으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이런 곳에서는 스스럼 없이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된다. 작년 12월까지 운전을 했었는데 당뇨병 탓인지 갑자기 눈이 안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집에는 91살이 된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한다. 자기가 이렇게 눈이 안 보이게 되었으니 이제 당신이 돈 좀 벌어 먹여 살리라 했더니 마누라가 그만 도망을 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 수당이라도 타 먹고 살려고 증명서를 만들러 왔단다. 그런데 그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본 부인인데 그러세요? 하고 물었드니 본처란다. 요즈음은 가장이 실직을 하여 생활이 어렵게 되면 여자도 따라서 가출을 해 버린다. 자기들이 키우던 아이들은 늙은 부모님에게 맡겨 버린다. 때때로 T.V.에서 이런 손자손녀만 남는 조손(祖孫)가정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종종 방영이 되는 걸 본다. 힘도 없는 그 늙은 부모는 무슨 고생으로 어쩌란 말인가... 옛날처럼 동거동락이 아니라 자기만 피신을 해 버린다. 참으로 비정한 세상이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건 아닐것이다. 먼저 번 물을 버려 준 아주머니는 자기 남편이 백내장이어서 왔는데 자꾸 수술을 미른다고 한다. 그것도 영글어야 된다나... 잘 안보이니 남편은 집에서도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단다. 나중에 보니 그 남편을 소중한 듯 팔짱을 끼고 모시고 가는 걸 보았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 비정한 사람 별의 별 사람이 많다. 가정이라는 따뜻한 핵우산이 벗어진 가족의 실체를 보는 건 아픔이다. 사람은 부부가 살면서도 평소 서로 덕을 많이 쌓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09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