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장이라도...

by 이용분 posted Mar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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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당화 )

    종이 한장이라도...                        Skylark
    아프다는 핑계로 한 동안 방 주변 정리를 못했다. 읽던 책, 읽을 책.프린트과제물,
    약 봉지등등 늘어 놓은 품새가 '동물의 세계'에 나오는 비버의 집 처럼 되어 있다.
    우선 배가 불룩하고 커다란 헌 봉투가 있기에는 이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드려다
    보았다. 어떻게 막아 볼 새도 없이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우편물 속에 이면이
    하얀 종이들을 버릴수가 없어서 오래 전에 모아 넣어 한 옆에 둔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들이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 놓은 이면지(異面紙)를 보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종이가 너무나 귀해서 요즈음 같으면 노점상에서 조차 포장지로도 안 쓰는 싯누런
    데다 아주 얇기까지 한 공책을 쓰기도 했던 일이 생각이 났다. 해방 후 피페해진
    나라의 경제사정으로 지질(紙質)도 형편없었다. 연필심마저 돌가루가 섞였는지
    종이를 갉아먹기 일수여서 구멍이 뻥 날뿐더러 잘 못 써서 지우게로 지우려면
    역시 질이 형편없는 지우게라 공책이 찢어져서 뒷면에 글자 쓰기가 힘든 일이
    다반사였었다.

    그런 시절을 겪은 우리세대는 요새 너무나 질이 좋은 종이 우편물들의 하얀 이면이
    아까워서 선듯 버리지 못 한다. 모아 놓은 종이가 점점 쌓여졌는데 그냥  버릴려니
    죄의식 마저 든다. 종이의 소비가 그 나라의 문화척도를 가눔 한다고 들 말들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주 넉넉 해 졌는지 어느 곳에서도 아끼는 사람도
    아끼자는 슬로건도 볼 수가 없다.

    나 역시 이 종이를 쓰려고 모아 놓기는 했지만 이 나이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일도 또한 영어 단어 스펠링을 쓰며 외을 일도 이제는 없다. 하다 못해 한문 글자를
    외우기라도 한다면은 모를까... 그도 이제는 한문을 쓰지도 않게 된데다가 그 나마도
    컴퓨터가 모두 대신한다. 예전에 이런 것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요긴했을까 하고
    안타까움만이 더 한다.

    모두 쓰는 김에 잘 쓰고 잘 살아 보자는 듯 온 천지에 전기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조금 입던 옷은 실증나서 쓰레기통에 벗어 던지고 억단위나 몇천만원을 들여서
    멀쩡한 집들을 리모델링 개념으로 뜯어 고치고 길거리에는 번쩍거리는 자가용
    행렬들이 넘쳐나니 너무나 잘 살게 된것을 체감(體感 )한다.

    배를 곯고 못 먹어서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날씬하다 못해 비썩 말랐다.
    반대로 남한에 사는 백성들은 영양과다 섭취로 비만이 되어 건강까지 위협 한다.
    어떻게든 살을 빼고 날씬해 지려고 눈물겨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또 한편 T.V.에서는 체널마다 어디가면 어느 음식점이 죽여주게 맛이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선전이 매일 생생한 화면과 더불어 넘치게 난무한다.
    살을 뺄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우는 사람들의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더 맛있는 음식이 개발되어 매일 입맛을 유혹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세상이
    되었다.
    잘 살게 된 이 마당에 공연히 못 살던 옛날을 회상하며 하찮은 종이 나부랭이를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 놓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걸가?...

    재활용을 하게 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우리들의 자식중 누군가 젊은이가 땀 훌리고
    애써 벌어온 외화로 사 들여온 이 귀한 종이의 용도가 알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T.V.에서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이 잘려 사라지는 밀림의 실상를 보여 준다.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종이의 원료들이 지구의 허파라 하는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밀림 속의 몇십년된 나무중 한 구루라도 자른 결과물이
    라는 걸  생각 해 본다.

    이게 지구 온난화의 근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 소비가 미덕이라고들 외쳐
    대기도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참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 모두 종이 한장이라도 헛으로 낭비를 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09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