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작은 꽃 선물(전편)

by 이용분 posted May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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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터 풍경)

    손자의 작은 꽃 선물                             청초
     
    (전 편)
    지난 해 부터 벼르던 방문이었다. 그러나 날자를 잡았다가도 매번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취소하기를 몇 번인가 반복 하였다. 이번에는 남편의 갑작스런 치과치료
    때문에 또 못가게 되나 보다 하던 것이 치료를 받고는 겨우겨우 날자를 정하게
    되었다.

    비가 올듯 잔뜩 흐리던 날씨도 먼지만 잠재울 만큼 조금 내리고 쾌청하게 개었다.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일로 전주에 사는 작은 아들집으로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이렇다 하는 봄 꽃들은 다 지고 오다 가다 영산홍 꽃들이 늦봄을 구가 한다.
    들녘에는 이미 5월의 푸른 물결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선 여행길에 휴계소에서 사먹는 통감자 튀긴 것에 매운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얼큰한 떡 볶이 맛이 함께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오늘은 일상 먹던 밥으로 부터의 탈출이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 호도과자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들이 즐거워 보이니 우리도 덩달아 즐겁다. 나서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들 내외와 두 아이의 어린이 날도 끼어 있어 방문 목적도 뚜렸하긴 하지만
    이번 방문의 부수적인 목적은 망내 아들과 낚시를 가기로 되어 있다.
    그 애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우리가 낚시를 함께 데리고 다녀서 낚시에 얽힌
    즐거운 추억이 아주 많다.
    함께 하는 동안에도 통하는 공통화제가 무궁무진한 사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아들과 평소 아들이 탐색 해 놓은 저수지를 향해
    우리는 차를 달렸다. 그 애는 여섯 살 자리 귀여운 손자 건우를 함께 대동하고
    나왔다. 저수지를 향해 달리면서 오늘은 얼마나 큰 붕어가 몇 마리나 잡힐까...
    살짝 흥분이 되어 기분이 들뜨는 듯도 하다.

    가는 길에 낚시점에 들려서 지렁이, 떡밥, 엄지와 검지가 조금 짧게 잘려 진
    손장갑도 한켤레 샀다. 봄볕에 농사꾼 아낙처럼 엄마 손이 구을릴까봐 염려
    하는 아들의 배려다. 제 아빠를 따라 차에서 내리고 낚시점으로 졸졸 뒤따라
    다니는 손자 모습이 못 보던 사이 제법 컸다.

    한참 동안을 서로 안 본사이의 낯서름을 무마하기 위해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이것 저것 실 없는 말들을 자꾸 걸어 본다.
    "건우야. 사랑해, 아빠 하고 낚시 자주 갔어?^^ "
    "응"
    2시간 반을 버스에 시달리며 온 피로도 잊은 채 오랜 만에 아들 손자를 만난 반가운
    마음과 낚시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려 져서 우리는 마냥 즐겁다.

    저만치 푸른 산과 들을 병풍처럼 둘러 친 넓다란 저수지가 길게 누워 있는게 보인다.
    여기저기 강태공들이 한가로히 낚시대를 드리운 풍경이 한폭의 동양화 처럼
    아름답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낚시를 드리운 장소도 아주 편안하고 어린 손자가
    뛰어서 오고가도 위험하지를 않아 아주 마땅한 장소다.

    그러나 싱싱한 지렁이를 끼워 던진 낚시로 부터는 어째 영 소식이 감감이다.
    오후 두세 시면 제일 낚시가 안 되는 시각이다. 붕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인지
    매번 그러했다. 장소를 옆으로 옮겨 봐도 마찬가지...
    역시 낚시는 예로부터 희망을 가지고 간 기대에 부응을 하지는 않게 마련되어 있다.

    심심한데 손자 사진이나 찍어 주기로 마음을 돌려 먹는다.
    막상 카메라 초점을 마추려니 주변이 쓰레기들로 너무나 어질러져 있어 사진기
    랜즈를 들이 댈 장소가 마땅치 않다.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들이 망쳐 놓은 결과다.

    “할머니~~ 꽃 선물이야...^^” 한 동안 심심해진 손자가 갑짜기 손에 든 것을 내민다.
    무언가 하고 드려다 보니 주변에 때마침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아주 작은 하얀
    냉이 꽃이다.
    멥쌀 알만한 크기의 이 꽃도 그 아이의 눈에는 꽤 크게 보이기도 하겠지...
    몇줄기 냉이 꽃을  짧게 꺽어 연신 '식식'거리면서 내 손에 정성스레 쥐어준다.

    순간 마음 속에 찌르르... 작은 전율이 인다.
    어른들 눈에는 잘 띄지도 않을 보잘것 없이 아주 작은 꽃...
    신이 요렇게 작은 꽃을 만드실 때에는 다 뜻이 있었겠지...
    꽃이라면 모두 크고 탐스러워야만 되는 건 욕심많은 어른들의 시각일것이다.

    멥쌀알만 한 작은 냉이 꽃도 꽃이었다. 여섯 살짜리 작은 손자의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련한 꽃 선물에 나는 마음 아래 저편에 잠자고 있던 기쁨의 물결들이
    서서히 일렁이면서 마음속이 차차 작은 행복감에 젖어 드는 것이었다.

    이제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 가려 한다. 갑자기 피로도 엄습 해 온다.
    우리는 일단 낚시대를 접고 내일을 기약하고 집으로 향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09년 5월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