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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4 21:32

서양 워낭소리

조회 수 636 추천 수 6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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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워낭소리  
                                                             청초

      어언 10년은 족히 흐른 일이다. 북구라파 지역 여행 길 만년 빙하가 녹아내려서
      생성된 노르웨이 휘요르드 협곡에 여행을 간적이 있다. 높다란 빙벽 사방에서
      녹아 내리는 폭포수가 엷은 쌀뜨물처럼 뿌유스름하게 고인 호수다.
      수도 없이 많은 갈매기 떼들이 '끼륵 끼륵' 소리를 내며 새우깡을 얻어먹기
      위해 우리가 탄 배를 쫓아 높게 또는 낮게 날며 쫓아오곤 하였다.

      이 송내 휘요르드 빙하 호수를 관광 유람선을 타고 건너 도착한 곳 관광 상품코너
      에서 서양만화 속에서 보았던 이국적으로 멋지게 생긴 쇠 방울을 하나 사 왔다.
      이렇게 지구의 최북단 지역에서도 목축업을 하나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넓고 푸른 목장에서 우유가 잔뜩 든 큰 젖이 늘어진 얼룩뱅이 젖소의
      목에 매달았음 직한 쇠 방울이다. 그 소리가 조금은 둔탁하고 생김새도 우리네
      놋쇠 밥그릇을 옆에서 꾹 눌러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남편은 이게 원래 소리가 나야 제격이라며 현관문 바로 위에 걸어 놓았다.
      원래 그걸 살 때부터 그는 그리할 생각으로 샀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닫을 때 마다 혹여 떨어지면 사람이 다칠 염려가 있다며
      극구 말리는 통에 이제 현관 바로 옆 벽에 자리를 잡고 걸려 있다.
      최근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 이 서양 워낭이 우리 집에서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浮上)을 했다.

      한국 워낭은 누런 황소의 목에 걸고 있어서 주인이 방안에 앉아서도 외양간의
      소가 움직일 때 마다 소가 잘 있는 것을 소리로 알린다. 두툼한 초가지붕을
      얹은 초가집과 순하고 큰 눈망울을 한 황소가 역시 황토흙으로 지은 쇠외양간
      에서 내는 워낭소리가 한테 어우러져 따뜻한 정경을 빚어낸다.

      게다가 문은 한지 문이라 소리의 울림효과가 배가 한다.방학 때면 찾아간 시골
      외갓댁에서 본 풍경이다.
      마치 한 가족처럼 느껴지는 소가 울리는 이 워낭소리는 집안 식구 들에게도
      평안한 요령(搖鈴)소리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소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물을 먹을 때나 제 몸에 붙은 파리라도 쫓을 양 머리를 흔들어 대면 더 요란한
      소리를 내어 자기도 이 집의 일원으로 건재함을 은연중에 알리는 듯도 하다.

      소가 쟁기를 끌고 밭을 갈 때에도 낭낭한 이 워낭소리가 농부의 '이럇''자자'
      소리와 주변 푸른 산천이 어우러져서 한 폭의 아름다운 한국판 전원 교향곡으로
      승화 한다.  소의 엉덩이에는 쇠딱지가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쇠똥에 대비하여 멋쟁이 젊은 여인의 귀걸이나 목걸이처럼 걸린 이 워낭은 어인
      호사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서 절로 웃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 무심히 이 서양 워낭을 자세히 드려다 보았다. 넓적한 놋쇠를 두드려
      접어서 밀가루 만두 양 귀퉁이를 눌러서 붙인 형국으로 만들었다.
      깨진 놋그릇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 워낭은 종을 만들 듯 소리에도 신경을 써서 한 덩어리의 쇠를 녹여서 만들어
      그 소리가 에밀레종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이 서양워낭은 넓적한
      놋쇠조각을 우그려서 붙인 격이니 아름다운 여운이 남는 소리가 날 리가 없는 것
      이다. 서양 워낭처럼 관상용을 위해 뚝딱 두드려서 건성 만든 것에는 비유가
      안될 것이다.

      소가 생애의 마지막 농사를 끝내고 목에서 워낭이 벗겨졌을 때 그 소의 운명도
      끝이 나는 것이다. 끝도 없이 턱 아래로 갓 삶은 당면발 처럼 흘러 내리는 소의
      침과 털이 이 워낭에는 묻어 있을 것이다.

      한 마리의 소가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고된 일생을 보냈던 삶의 때가
      덕지덕지 묻었기 때문에 그 소리 속에는 소의 근면하고 맑은 영혼의 소리가
      깃들어져 있을 것 같다.
      그런 연유로 해서 그 워낭 소리가 더욱 영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09년 5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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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2009.05.26 19:01
    이선배님의 글을 읽는데 엊그제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뉴스 방영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저런 발자취를 남기면서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가는구나' 하고보니 남의 일 아니게 느껴집니다.

    "소가 생애의 마지막 농사를 끝내고 목에서 워낭이 벗겨졌을 때 그 소의 운명도 끝이 나는 것이다. 끝도 없이 턱 아래로 갓 삶은 당면발 처럼 흘러 내리는 소의 침과 털이 이 워낭에는 묻어 있을 것이다"라고 쓰신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가 쓰는 글들이 바로 우리의 워낭으로 남겠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득 "근면하고 맑은 영혼의 소리가 깃들어"지도록 정성들여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이선배님의 글을 <부고필라> www.bugophila.org 에 실으면서, 이선배님과 주위의 사랑하는 분들이 모두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명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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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분 2009.05.27 00:10
    김호중 후배님. 반갑습니다.

    얼마전에 '워낭 소리'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가족보다 더 아끼고 중히 여기던 소가 제 명을 다하자
    그 연로한 농부의 손에 남은 것은 워낭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결국은 언제가는 그 늙은 소 모양
    자기의 발자취를 남기게 되겠지요.
    노인과 함께 그 늙은 소가 무거운 걸음으로
    겨우겨우 날랐을 나뭇단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번 읽어 주시고 아울러 www.bugophila.org 가족들께서
    제 글들을 읽을 수 있도록 애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후배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