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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0:24

어떤 고아(孤兒)

조회 수 644 추천 수 7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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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중의 한 사람이 자동차 보험드는 일을 부탁하기에 우리 집 자동차 보험회사에 연결을 시켜주느라고 그 분을 데리고 보험회사를 찾아갔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쌍동이 삼촌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회사라 그런지 사무실 사방, 벽이나 책상 위에 가족의 사진들이 많다.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고 형제 중에 한 사람은 현직 목사라서 그런지 목사인 나의 남편에 관해서 매우 호감을 가지고 이것 저것 물으며 많은 관심을 갖기에 모시고 간 교인 가정을 후대(厚待)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자기 딸이 서류를 작성하고 검토하는 동안에 사장 겸 아버지인 분이 목사의 아내(師母)인 자기 계수(季嫂, sister-in-law)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서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그 보험회사 직원에 대하여는 평소에 남편을 통해 한두번 말로만 전해 들어서 전혀 기억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오늘 나와 일행을 반기는 모습이 마치 십년지기를 대하듯 참으로 따뜻하다. 그리고 그가 우리들을 왜 그렇게 반가와하는지 그 사연을 들어보니 과연 가슴이 뭉클하게 감동적이다.

자기의 계수는 고아(孤兒)로 자랐다고 한다. 미국군인과 한국 여자분한테서 출생하여 아버지는 일생동안 기억조차 없고 그가 12살 되었을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아원에서 살다가 펄벅재단(Pearl Buck Foundation)에서 미국인 가정에 입양을 시켜주어서 미국에 왔는데, 부모를 잘 만나서 대학교육도 받고 유복하게 살다가 선교사로 사역하던 자기 막내동생을 만나서 사귀고 결혼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목사사모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다면서 자랑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물끄러미 그 사진을 드려다 보는데 많은 생각들이 빠른 속도로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본적도 없이 산과 들에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잡초처럼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그 외로운 고아원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은 저를 그리도 아끼고 사랑하셨기에,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마음씨 착한 양부모님을 만나게 하시고, 교육을 잘 시켜서 저렇게 유용한 재목으로 만드셨구나!” 내 핏줄이나 되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핏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그 사모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아담하고 날씬한 체격에 눈이 크고 콧날이 오똑한 얼굴로 여간 미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인데 또 어떻게 보면 스패니쉬 비슷하게도 보이는 얼굴에는 밝고 환한 웃음이 티없이 가득해서 아무리 보아도 부모없이 자란 슬픔을 찾아볼 수 없다. 하기사, 아주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친히 그 엄마가 되고 그 아빠가 되신 줄을 알았으니, 어찌 슬픈 인생이었다 하겠는가? 문득 기독교와 기독재단을 통해 훌륭하게 성장한 고아들의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

십여년전 남편이 원목(院牧, Hospital Chaplain)으로 있던 병원의 행사에 초대 받았을 때에 만난 젊은 한국인 의사 생각이 난다. 반가운 마음에 “한국분이시군요”하고 인사를 했더니 “한국사람인 것은 맞는데 한국말은 할 줄 모릅니다” 하길래 ‘아마도 이곳에서 태어나서 그런가보다’ 생각을 했더니 남편 이야기가 ‘이 사람이 갖난 아이일 때에 미국에 입양되었는데 양아버지가 의사라서 그 아이도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훤칠하고 똑똑해 보이는 그 청년의사를 보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巫女圖)를 생각해본다. 한국에 샤마니즘(shamanism, 무당풍속)이 한창일 때에 들어온 기독교는 많은 희생을 치루었다. 무당의 아들인 주인공의 덕분으로 산골에 교회가 서게 되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예수귀신에 홀렸다’고 믿어 오히려 자기가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부엌칼로 아들의 등을 찌르고, 큰 상처를 입은 아들은 결국 죽게 되는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듯, 그 지역에 기독교가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원래 목적했던 자동차 보험관계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주 성실한 신앙인들에게 우리 집 자동차 보험 일을 맡기고 있구나 생각하고 마음이 기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 사람들이 아주 훌륭합디다.”
“그렇고 말고. 당신이 더욱 놀랠 얘기도 있어. 이따가 내가 말해주지.”
“그래요? 나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어쩌면 남편과 나는 '사진속에서 밝게 웃는 그 혼혈사모(混血師母)'에 관해서 같은 얘기를 준비하고 서로에게 말해주려는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동포의 꽃 무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