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빛 편지 / 양현주 -
살다보면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위험하게 공중에서 곡예를 할 때가 있지요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비밀을 말한다는 것
내면을 숨김없이 보여줄 사람이
곁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참 행복한 일이에요
어두운 삶을 지나올 때면
직선보다 부드러운 곡선의 길을 걷고 싶었어요
대나무처럼 곧게 뻗은 나를 내어놓고
텅 빈 속을 쪼개고 싶을 때가 있지요
장작처럼 반을 뚝 쪼개고 나면
젖은 속이 말라서 보송해질 것 같았어요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안의 사각의 틀에서
길을 찾지 못할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나를 동그랗게,동그랗게
가위질하면 좋겠다고
바람이 불면 나는 흔들려요
흔들리지 않으려고 파란 하늘만 봐도
나는 살아 있음으로 눈을 뜨고
생각하므로, 꿈틀거려요
보아요
흔들거리는 것엔 사람 냄새가 있어요
흔들거리는 그네 흔들리는 풀꽃
모두 흔들리며 꽃 향기가 나요
흔들리는 것이 두렵나요?
당신 당신 눈앞에서
풍경들이 흔들리거든 내 숨결인 듯
가슴을 펴고 살며시 만져보아요
바람의 손을 빌려 달아놓은 초록편지
창밖 노을에 달아놓은 안부
당신 잘 지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