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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수염과 아들                                청 초  
    남편의 수염은 아무리 깨끗이 깎아도 한 이틀만 지나면 봄날의 보리순 처럼 어느
    새 또 송송 자라나곤 한다. 그는 평생 수염을 길게 기른적이 없다. 젊던 시절에는
    흰 피부에 수염을 깎은 구레나룻 자리가 유난히 새파랗게 돋보여 젊음을 과시 했었다.

    예비군 훈련을 가서 몇박 며칠을 지난 후 웃자란 수염에 추레한 모습을 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보니 가지런한 멋진 수염이 아니었다. 그 수염은 마치 가는 철사
    부러쉬 처럼 뻣뻣하기도 하여 가닥가닥이 제 마음대로 뻗쳐서 조금만 더 길게
    기르면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산적의 수염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웬일인지 아침부터 남편이 수염을 깨끗이 깎았다고 나 보고 쳐다 보라고 한다.
    오늘은 큰 아들이 다니러 오기로 한 날이다. 그 아이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면 어린 아이처럼 얼싸 안은 채 아버지의 이마 두 뺨과 볼에 마구 뽀뽀를
    하고 비벼댄다.

    보기에는 다 큰 아이가 어찌 저러누?  가히 연구대상감이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들을 보면 그들끼리 그런식으로 비벼대며 같은 혈통
    임을 과시하는 걸 본다.그럴 때 보면 아빠사자와 새끼사자를 보는 것처럼
    연상이 되곤 한다.

    "오늘은 찬진이가 오는 날이잖아 그 애의 뺨이 아플까 봐 수염을 말짱히 깎았지"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 그는 과묵하고 엄한 아버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다니러 온 아이가 뺨에 뽀뽀라도 하려 하면 얼굴을 찡그리고 이리저리 피하며
    칠색 팔색을 했었다. 아이들이 커서 소리 소문 없이 모두 빠져나간 후 우리 두
    부부만 사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 애들을 오래 못 보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한 건 부정 할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도 아이들의 이런 관심이 흐뭇했나 보다.

    기다리던 아들이 왔다. 그들이 서로 붙들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 모양 이번에도
    그런식으로 반겼는지는 잘 보지 못 했다.그 애는 오자마자 내 서제로 들어가더니
    준비 해 가지고 온 자동차 세정제를 헌겁에 뿌려서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판
    마우스를 차례차례 정성스레 닦아 낸다.지난번에 와서는 내 보드 판이 지저분 해
    졌다면서 바꿔야 쓰겠다고 하기에 극구 사양을 했었다.

    년 전 내가 문자판(文字板)에 우유를 쏟는 바람에 못 쓰게 되어 바꾼지가 얼마
    안 된 새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안 좋은 나는 먼지가 꼈는지 어쩐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몰랐었다. 손때가 꼈다손 치더라도 그건 나만의 것이니 괜찮지 뭐
    어떤가 해서다. 아무튼 그 아이의 그런 보살핌이 마음속으로 고맙고 따뜻하다.

    올 때 마다 우리 집 과일이 떨어지지 않았나 신경을 써서 제일 맛있는 걸
    고르고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걸 이것저것 함께 사오곤 한다. 그 애는
    우리에게 들이는 정성이 한결 같다. 매번 우리를 제 차에 태우고 먼 곳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꼭 드라이브를 시켜준다. 예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 듣던 음악을 함께 차 안에서 들으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아이를 키운 보람을 맛보곤 한다.

    시간이 빠듯한 중에 오는 터라 갈 길이 바쁜 그 아이는 아빠를 보듬어 안고
    길고도 소나기 같은 석별의 정을 남긴 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각오를 했는지 이번에는 의연하게 받아 준다.
    매번 "징그럽다 얘야,"  거절하며 곤욕을 치르는구나 어쩌지...
    혹여 마음이 여린 아이가 상처를 입을까 봐 아슬아슬하던 나의 생각도 편안하게
    바뀌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다녀가면 눈에 띄게 힘이 솟는 것 같다.
    한해한해 나이가 년로 해 지는 그가 이번에도 크나 큰 위로를 받아서 다음 번
    아들 아이를 만날 때까지 무던하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었겠구나...
    마음속으로 큰 희열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2009년 3월



  • ?
    김호중 2009.06.21 16:10
    이제부터 앞으로는 음악을 옮겨가도 괜찮습니까?
  • ?
    이용분 2009.06.21 18:53
    김호중 후배님.

    제가 미국의 기준을 전혀 모르므로
    매우 조심스러운 사항입니다.

    이 곳에서 괜찮을 것 같은
    음악은 올릴 예정입니다.

    7회 홈에 있더라도(미국 기준이 아니므로)
    음악은 안 옮겨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아주 죄송합니다.

    참 유감스럽지요?^^
    우리 모두 음악을 즐겨하는데...

    그럼 이만...
  • ?
    김호중 2009.06.22 23:24
    이선배님, 말씀대로 '이선배님의 글에서' 음악은 옮기지 않겠습니다.
    '김혁선배님의 글은 음악에 관해서 다시 새로' 여쭈어 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를 드립니다. 마치 잘 아는 분의 가족사진을 보는
    것처럼 이선배님의 글속에 아버지와 아들의 소박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모와 자식이 주고 받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한 번은 연세가 많이 드신 어느 노인 한 분이 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식이 언제나 철이 드나 했는데 어느새 장가 들어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나도 모르게 입장이 뒤바뀌어서 나를 얼마나 염려하는지 마치 철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걱정하며 돌보러든다."

    당신은 '불평'으로 하신 말씀인데 주위의 다른 어른들은 모두 부러워
    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아드님의 효성을 마음껏 즐기실 때 같습니다.
  • ?
    이용분 2009.06.22 23:58
    원래 가족 이야기는 써 놓고도 망서리게 됩니다.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누구나 이런 정도의 가족 사랑은 있을 줄로 압니다.

    그래서 몇일 전에 올렸던 '삼종 셋트' 라는
    딸과의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지워 버렸지요.

    내가 수필을 배우는 곳의 교수님은 가정을 아주 중요시하고
    매번 글 잘 쓰기보다 가족간의 사랑을 아주 강조하는
    생활 철학강의가 대부분을 차지 합니다.

    시나 아름다운 글도 좋지만 가족간의 따뜻한 정이
    서린 글들을 좀 많이 올렸으면 좋겠어요.

    사실 나의 남편은 자기 얘기가 인터넷상에 오르는 것을
    매우 싫어 하는 편이어서 이 글을 올리고도
    아주 조마조마 했었지요.^^
    그래서 진즉 써 놓고도 이제사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난번에 낸 책에 가족이야기를 몇편 실으면서
    그 어려움이 좀 해소되었습니다.

    음악은 아주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후배님께서 이제 음악을 올리는데 달인의 경지로 가셨는대...^^

    저의 사진은 이제 너무 늙어 버려서...
    김혁씨가 부고필라동창회 계시판에 올린 7회
    "우리는 오랜친구 19인 사진 중 선농축전 때 찍은 것중
    좀 큰 사진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번째에
    맨 오른쪽에 썬캡과 썬 그라스를 쓰고 있는 친구의
    왼쪽 중간 분홍색 상의 안에 빨간 샤쓰를 입은게 저고 ,

    운동장에서는 연 분홍색 코트에 연초록 바지를 입은
    인물이 접니다.ㅎㅎㅎ

    후배님.여러가지로 정말 감사합니다.!
  • ?
    김호중 2009.06.23 05:49
    음악 올리는 기술은 미강님의 자상한 교습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이선배님만 따로 분리가 안 되어서 <7회홈 사진앨범>에서 하나
    그리고 다른데서 또 한 장 가져다 실었습니다. 워낙 미인이시라서 어떤
    사진이든 상관없더군요.

서울사대부고 제7회 동창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