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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속편) 요즈음은 매일 훤하게 날이 밝아 오는 새벽녘에 날아다니면서 영롱하게 우짖는 새들의 소리에 눈을 뜬다. 우리 아파트 뒤쪽 개울 둑길을 따라 심어 놓은 나무들이 십여년 간 자라나서 어느 해 부터인가 아주 울창하게 우거졌다. 해마다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온갖 새들이 모여 하루 종일 노래의 향연을 편다. 그중 내가 아는 새는 고작 개똥지바퀴 새 뿐이다. 아파트에 이사를 온후 포기했던 새들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 새삼스러이 행복감에 젖게 된다. 며칠을 집안에서 꼼짝을 안하다가 늦은 점심을 사 먹을 셈으로 개울을 따라 뒷길로 주욱 연결된 조금은 경사진 길을 걸어 가기로 했다. 그늘진 벚나무 아래 길바닥이 검은 벚찌 색으로 물이 들어 얼룩덜룩 하다. 벚지가 아직도 까맣게 농익어서 매달려 있다. 때 마침 몇 사람의 일꾼들이 개울 둑 경사진 면에 맥문동 모종을 심고 있다. 이 묘목은 잎이 난초처럼 생기고 그늘진 곳에서도 잘 큰다. 가을이면 잘디 작은 연 보라색 꽃이 핀 다음 작은 머루알 송이 보다 좀 작은 까만 열매가 열린다. 약용으로도 쓰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냥 푸른색 풀들이 무성 해 있어도 좋으련만 나라에 세금이 잘 걷혀 주머니가 두둑해 지니 손이 근질근질. 전 국토공원화 정책의 일환인가 보다. 우거진 나뭇 잎 사이로 보이는 6월의 하늘은 푸르고 생기가 넘친다. 제 때에 가면 사람들이 항상 북저거려 기다리는 게 싫어 일부러 늦게 가는 바지락 국수 점심을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예의 텃밭 사이를 또 지나가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썼던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의 속편인 셈이다. 이제 사람들이 심어 놓은 모든 채소들이 제철을 만난 듯이 싱싱하게 자라 나고 있다. 고였던 물길이 말라서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낮고 좁은 도랑 둔덕에 뜻 박에도 돗 나물과 야생 돌미나리가 무성하다. 이건 먹는 나물인데 간에 좋다고 한다. 동행이 기다려 주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따라 가는 수 밖에... 철사로 둘러쳐 놓은 울타리에 다홍빛 넝쿨 콩 꽃이 철사에 몸을 매달고 피어있다. 묘령의 여인의 얼굴에 그린 예쁜색 맆스틱 처럼 예뻐 지나는 나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마디 사이가 길쭉해서 원래의 제 잎은 멀리 두고 키가 큰 아주까리 잎이나 그 외의 다른 푸성귀의 연초록 이파리에 둘러 쌓여 그 요염한 빛깔을 뽐내고 있다. 문득 나의 젊은 날 우리가 뜨락이 있는 집에 살 때 생각이 난다. 앞마당의 발코니 높다란 나무 난간에 기다란 줄을 매달고 심어 놓았던 이와 같은 종류의 넝쿨 콩 꽃이 생각이 났다. 어느 친구가 주어서 얻어 심은 빨간 콩꽃이 줄을 따라 예쁘게 대롱대롱 매달려 한창 피어 났다. 어느 날 친정 동생내외가 남자 조카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놀러 왔다. 때 마침 줄을 따라 빨간색으로 콩꽃이 곱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자마자 말릴 사이도 없이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작대기로 이유불문 이 넝쿨 콩꽃을 휘둘러 무참히 뭉개 놓아 버렸다. 그 애석함이란... 이런 일은 얼른 잊어 버려야 되는데 때때로 이렇게 생각이 떠 오른다. 이제 그 아이는 잘 커서 어른이 되어 그 나이 또래의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다. 호박은 맨처음에 난 거친 이파리를 달고 순이 뻗어 커질수록 연한 호박잎과 덩굴을 따라 꽃들이 핀다.어쩐 일인지 호박이 열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시들어 오그라든 호박꽃을 비집고 호박벌이 온 몸에 노란호박 꽃가루를 잔뜩 묻혀 가지고 기어나온다. 지난번 왔을 때 비실비실 시들어 가던 그 고구마 순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파리와 넝쿨들이 억세게 뻗고 있다. 이제 럭비공처럼 생긴 갸름한 다홍색 껍질의 고구마가 땅속에 열리면 밭 이랑이 쩍 벌어지면서 고구마가 굵어 갈 것이다. 뒤 늦게 열무 씨앗을 뿌렸는지 자로 재고 뿌린 듯한 열무가 일렬종대로 콩나물 시루 속 콩나물 처럼 서로 좁은 틈을 비집고 새싹이 돋아나 있다. 이 밭주인은 서투른 농삿꾼 임이 분명하다. 원래 씨앗은 조금 넓게 훌훌 뿌려야 성글게 나면서 씨앗도 덜 들게 마련이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그랬겠지만 그렇게 촘촘하게 심으면 솎아 낼때 함께 뿌리가 뒤엉켜 뽑혀서 애를 먹게된다. 구조도 멋있게 만들어 세워놓은 양은 밭침 대에 스프링 같이 생긴 가느다란 나사 넝쿨로 감고 올라가 오이꽃이 한창 피었다. 시든 꽃이 달려 있는 밑을 드려다 보니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오이가 꼬부라진 고리모양으로 몇개 매달려 있다. 오이는 진드기가 많이 끼는 걸 보게 된다. 농약을 자주 뿌려야 제대로 반듯한 오이로 큰다. 잘 자라지 않고 오그라든 오이를 보면 진딧물이 잔뜩 끼어서 열매가 크지를 못 한다. 조금은 애를 먹이는 작물이다. 흙이 안 묻었어도 오이는 농약을 아주 많아 치니 잘 씻어 먹어야 안심이 된다. 연보라색 가지꽃들이 한창이다. 이 꽃은 피었다 하면 틀림 없이 기다란 가지 열매를 맺는다. 가지 꽃과 가지는 동색이다.오이나 호박은 꽃 받침 밑에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암꽃이라야만 열매가 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지나무의 줄기와 뿌리는 겨울에 발이나 손에 동상을 입었을 때 그 가지나무를 태우거나 삶아서 미지근한 그 물에 여러번 발을 담구면 얼음이 빠지는 약효가 있다. 어쩐 일인지 둥그런 머우가 울타리 밖에 버려진 듯 자라고 있다. 누군가가 그래도 이 나물을 알았기에 근처에 심겨져서 자라나고 있겠지... 살강 아래 떨어진 수저다. 나는 농사를 져 본적은 없다. 크면서 친정 할머니가 집에 달린 텃밭에서 채소 농사를 지으실때 어깨 넘어로 보고 알게 된것이다. 바람 결 따라 노랑나비가 꽃을 찾아 너울너울 날아간다. 멀지 감치 피어 있는 노란 빛깔의 쑥갓 꽃을 향해 이리 비실 저리 비실 교묘히 디카의 렌즈를 피해서 멀리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제 6월도 하순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가고 있다. 이해도 벌써 반은 지난 셈이다. 요즈음 건강에 자신이 없는 나는 한해를 살고 나서야 무사히 한해를 넘겼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곤 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 !" 하고 누군가가 찬미 했듯이 사방이 나무로 들러 쌓인 이곳에 오면 막혔던 숨도 시원하게 확 트이고 한껏 팔을 벌려 하늘을 처다 보며 큰 숨을 내 쉬게 된다. 그런 맛에 사람들은 큰 수확도 없는 이 곳에 매달려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구나 하고 이해가 된다. 09년 6월 23일 |

2009.06.23 16:23
6월의 풍경(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속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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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공감합니다. 젊어서는 사람이 친구인데 나이 들면서는 자연까지도
친구가 되어 함께 내밀한 정을 나누게 되는 것이 '늙는 보람'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15회에서 무슨 그런 노숙한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이선배님의 글을 특별히 애호하는 것은 그런 '부드러움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