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생신인 음력 1918년 6월 8일을 양력으로 찾아보니 그 해에는 그 날이 7월 15일이었습니다. 소천(召天, 하나님이 부르셔서 별세)하신 날은 1990년 9월 26일인데 친정 조카딸 생일이라 어머님의 자손이 축하와 애도를 겸하게 되며, 예수 믿는 분을 추모하는 일이 마치 돌아가신 조상의 제사를 드리는 것 같아서, 생신날은 아들 딸이 함께 모여서 축하하고, 추모일은 각 가정이 개별적으로 지키는 것이 좋을 듯 생각했습니다.
저희들의 어머니 故홍점자 권사님은 7/15/18에 출생하셔서 9/26/90에 소천하셨으니 이 땅에는 72세 조금 넘게 사셨습니다. 음력으로는 무오생 (戊午生)이라 말띠이셨는데, 부잣집 큰 딸로 출생하셔서 어린 시절을 “유복한 환경” 가운데 지내셨고,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설립한 배화여고를 졸업하시고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우셨으며, “선진 개화사상”을 익혀 늘 밝고 긍정적인 인생관으로 삶의 기준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부잣집 큰 딸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남편을 일찍 사별하시고 마흔을 갓 넘은 연세부터 홀로 사남매를 키우시면서도 괴롭다고 한숨지으며 불평하시는 일도 드물고, 더우기 넉넉치 못한 살림을 꾸려 나가시면서도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마련하셔서 우리들의 식탁은 항상 사랑과 웃음이 풍성하게 넘쳤습니다.
어머님은 또 “굳건한 믿음의 여성”이셨습니다. 여학생 시절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몸으로 익히며 배우신 신앙이라서 세상 어떤 풍파가 몰아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었고, 이웃을 대하시되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섬기는 따뜻한 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새우젖을 팔러 오는 행상(行商) 부녀자들은 새우젖 값에 보태어 한 보따리 선물을 받아 가곤 했습니다.
어머님의 “진보적인 인생관”은 일제와 해방, 그리고 6/25사변을 거치면서 양편 날선 칼날처럼 어머님에게 용기를 주는 근거도 되었고, 또 천길 만길 깊은 슬픔 속으로 인도하는 고난의 원인도 되었나 봅니다. 언젠가 어머님께서 “내 삶이 야곱의 일생 같았구나 (창47:9)” 말씀하실 때 문득 큰 아들을 앞서 보내신 어머님의 뼈아프신 슬픔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머님께서 소천하신지도 어언간 19년이 가까와 오고, 지극한 사랑으로 기른 세 자녀와 그 짝들이 모여 자신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따뜻하며 너그러운 생애를 사신 어머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하나 남은 아들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충성껏 섬기며, 큰 딸은 목사 사모가 되어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어머님을 제일 많이 닮은 작은 딸은 사업이 형통해서 이젠 걱정이 없고...”
“그러고 보니 엄마는 참으로 성공하셨어요!”
저희들의 어머니 故홍점자 권사님은 7/15/18에 출생하셔서 9/26/90에 소천하셨으니 이 땅에는 72세 조금 넘게 사셨습니다. 음력으로는 무오생 (戊午生)이라 말띠이셨는데, 부잣집 큰 딸로 출생하셔서 어린 시절을 “유복한 환경” 가운데 지내셨고,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설립한 배화여고를 졸업하시고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우셨으며, “선진 개화사상”을 익혀 늘 밝고 긍정적인 인생관으로 삶의 기준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부잣집 큰 딸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남편을 일찍 사별하시고 마흔을 갓 넘은 연세부터 홀로 사남매를 키우시면서도 괴롭다고 한숨지으며 불평하시는 일도 드물고, 더우기 넉넉치 못한 살림을 꾸려 나가시면서도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마련하셔서 우리들의 식탁은 항상 사랑과 웃음이 풍성하게 넘쳤습니다.
어머님은 또 “굳건한 믿음의 여성”이셨습니다. 여학생 시절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몸으로 익히며 배우신 신앙이라서 세상 어떤 풍파가 몰아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었고, 이웃을 대하시되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섬기는 따뜻한 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새우젖을 팔러 오는 행상(行商) 부녀자들은 새우젖 값에 보태어 한 보따리 선물을 받아 가곤 했습니다.
어머님의 “진보적인 인생관”은 일제와 해방, 그리고 6/25사변을 거치면서 양편 날선 칼날처럼 어머님에게 용기를 주는 근거도 되었고, 또 천길 만길 깊은 슬픔 속으로 인도하는 고난의 원인도 되었나 봅니다. 언젠가 어머님께서 “내 삶이 야곱의 일생 같았구나 (창47:9)” 말씀하실 때 문득 큰 아들을 앞서 보내신 어머님의 뼈아프신 슬픔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머님께서 소천하신지도 어언간 19년이 가까와 오고, 지극한 사랑으로 기른 세 자녀와 그 짝들이 모여 자신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따뜻하며 너그러운 생애를 사신 어머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하나 남은 아들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충성껏 섬기며, 큰 딸은 목사 사모가 되어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어머님을 제일 많이 닮은 작은 딸은 사업이 형통해서 이젠 걱정이 없고...”
“그러고 보니 엄마는 참으로 성공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