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소리                               청초    어느 듯 무더운 8월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저만큼 달아 났다. 상큼한 9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 든다. 아직도 낮에는 무시 못하게 따끈따끈 덥긴 하지만 마음속 느낌은 모르는 새 가을이 들어 와 있다. 뭉게 구름이 점점이 떠가는 드높은 가을하늘... 꽃 위에 앉을듯 말듯 선회하는 고추 잠자리가 이제는 가을이 깊어 감을 알려 준다. 요즈음은 귀뚜라미의 계절이다. 바로 뒤에 작은 개울이 면한 우리 집은 개천 변 풀숲 속에서 울어 재끼는 그 청아 하고 아름다운 귀뚜라미 소리는 정말 무슨 교향악단이 매일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향연을 벌리는 듯 하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제절로 즐겁다. 밤에 운동 삼아 탄천 뚝 길을 걷노라면 풀숲속에서 지휘자 없이도 서로 잘 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각양 각색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마치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끝없는 협연들 처럼 우리의 귀를 향기럽게도 한다. 그냥 찌릿찌릿 우는 놈 길게 여운을 남기듯 짧게 베이스를 넣는 놈 각양각색이다. 가끔 가로등불 아래 나무 가지에 붙어서 미안한 듯 가리 늦게 끊어질듯 질이 좋지 않은 악기를 켜듯 겨우 한 줄기씩 소리를 내어 보는 매미 소리도 있고... 그 것들의 소리는 구성지기도 하고 간절하게도 들린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이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가을 밤이면 고향 집 섬돌 밑에서 울던 귀뚜라미 소리의 추억과 함께 두고 온 가족 생각도 한층 간절할 것 같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가을 비가 주룩주룩 끝 없이 쏟아졌던 어느 가을에는 시원찮은 해가 있었다. 땅속에 알을 낳는 그들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질척거리면 그 속에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물크러져 다 죽을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올해는 길고 무더운 날씨가 귀뚜라미들의 생태에 아주 적합했나 보다. 귀뚜라미는   8~10월에 나타나 풀밭이나 뜰 안에 살면서 수컷이 가을을 알리듯이 운다.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 (≒ 일명,귀뚜리·실솔(蟋蟀)·청렬(蜻蛚)라고도 한다.) 그악스럽기 그지없던 매미는 어느새 그들이 맡은 레파토리가 어지간히 끝이 났는지 슬그머니 그 소리도 조금 잦아 들었다. 옛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시절에는 부뚜막이 있고 밥을 푸다 떨어진 밥풀 조각들을 먹이 삼고 밖의 날씨는 좀 추워도 따뜻한 그곳을 집을 삼아 서식 했다. 사람이 웅성대면 구석에서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숨어 있던 귀뚜라미가 한밤중에야 이제는 제 세상인양 몇 마리가 구성지게 울어대면 부엌 안이 온통 울려 퍼져서 마치 커다란 음악실 같이 아름답던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에는 열어 놓은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어찌도 시원한지 반 소매를 입은 팔의 살갗이 시려서 창문을 스르르 닫아 버렸다. 그래도 한낮이 되면 두 얼굴을 가진 날씨가 기염을 토하듯 또 더울 것이다. 이제 제가 더우면 얼마나 더 더우랴 마음속에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야 될것 같다. 들녘의 곡식들도 야무지게 영글것이고 과일도 달고 맛나게 익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 덕에 귀뚜라미들의 아름다운 향연을 들을수 있는 날들이 길어지면. 이제 또 다른 의미의 자연의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질 터이니까...                                        09년 9월 11일 청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