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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에 본 美國](17)


누드 예술




  로스앤젤스시-친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도시였다.

  『여보게 K군,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 문명의 본산지이고 전시장인 셈인데 내가 그간 돌아본 만화경(萬華鏡) 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빠진 게 딱 하나 있네.』
  『그래? 그게 뭔데?』

  『나는 그간의 여행 중에 내 나름대로 별취미를 발휘해서 미국의 치부를 열심히 들여다 보아왔네. 아덜트 북, 아덜트 무비, 스튜디오, 토플리스 고고살롱의 라이브누드쇼 등 닥치는 대로 본 셈인데 그게 다 그렇고 그렇더군. 듣자니 LA에는 진짜 누드쇼가 있다던데 거길 좀 구경시켜주지 않겠나?』

  『아 그래? 그럼 자네는 아마 풀 누드쇼를 한번 보자는 얘기인 모양이군. 그런데 하나 알아둘 것은 도덕과 예술의 나라인 미국에는 풀 누드로 <쇼>를 벌이는 곳은 없다네. 법이 금하고 있거든... 있다면 다만 <누드 藝術(예술)>의 공연장이 있을 뿐이지.』

  『누드 예술? 그럼 그건 어떤 건데?』
  『그게 바로 그거지, 업주는 법의 경계선위에서 곡예를 부리고, 법은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눈감아 주는 그런...』

  우리가 간 곳은 할리우드의 「아이바르 극장」이었다. 시간은 밤 10시경.
  공연제목도 미처 확인해 볼 틈 없이 10달러를 투자하고 들어가 본 극장안의 모습은 여느 데와 다른 게 별로 없었고 다만 백여 석쯤 됨직한 소규모 객석의 한가운데로 퍼레이드 무대가 1자로 뻗어 나와 있는 점이 좀 색달랐을 뿐이다.

  무대 한복판에서는 늘씬한 미녀 한사람이 소위 무드음악에 맞춰서 선정적인 춤을 추고 있었다. 무용수는 번쩍이는 금속편이 수없이 달린 하늘하늘 하는 망사의상으로 몸의 몇 군데를 감추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무드가 점차 무르익어가면서 이내 한두 편씩 떼어 팽개쳐졌다.

  결국 알몸이 된 미녀는 유연한 몸매와 발랄한 춤으로 관객들을 뇌쇄(惱殺)시키면서 돌출 무대로 진출해 나왔다.
  모든 시선은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려 움직였고 무용수가 다리를 번쩍번쩍 쳐들거나 주저앉아 몸을 용 트는 동작을 보일 때마다 모든 눈의 초점들이 가장 흥미 있는 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객석의 곳곳에서는 기성들이 터져 나왔다.

  또한 유리판을 깔아놓은 돌출무대의 플로어에서는 삼원색의 은은한 조명이 각광을 대신하고 있어서 미녀의 알몸은 그 하체부가 더욱 유혹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었으니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이쪽에 더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객석에 접한 무대 연변에 <연방법은 연기자의 몸에 손을 대는 일을 금함>이라고 쓴 팻말이 달려 있었지만 1~2달러짜리 지폐를 배우의 몸 관능적인 곳에 끼워주는 데는 개의치 않았다.

  음악이 끝나자 몇 장의 지폐를 움켜쥔 연기자는 여기저기에 팽개쳐진 의상조각들을 거두어 들고 어설픈 표정을 지으며 퇴장하였는데, 어쩌면 이 장면이 이<누드 예술> 극장의 성격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공연은 출연자가 바뀔 때마다 저마다 약간의 바리에이션을 보였지만 <예술>의 주제만은 꾸준하였다.
  수기(睡氣)에 못 이겨 <누드 예술> 감상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일어서는 나의 심정은 심히 씁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