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에 본 美國](18) 어느 여행안내서

by 심영보 posted Oct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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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에 본 美國](18)


어느 여행안내서




  아덜트 북을 파는 가게에서의 일이다.

  4면의 벽과 복판의 서가를 온통 메우고 있는 갖가지 섹스 화집(畵集)과 잡지를 뒤적이던 가운데에서 유난히도 검소하게 장정되어 있는 아담한 모습의 핸드 북 「세계여행안내서」를 발견했다.

  마치 여행 중인 당신이 꼭 필요한 책이라는 듯 내 눈앞에 드러난 이 책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손에 들고 뒤적여 보니 예상했던 것과 같은 여행안내도나 관광지 그림 또는 사진 등은 하나도 없고 오직 활자만이 가득히 메워져 있기에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니 영어와 불어의 두 가지 글로 좌 우면에 대역 기술되어 있는 그런 것이었다.

  우선 내게 필요할 듯해서 미국 항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눈에 뜨이질 않아서 할 수 없이 목차를 찾으니 미국을 소개하는 부분은 쏙 빠져있고 그 외의 세계 각국 중요도시 이름만이 나라별로 나열되어 있다.

  우선 궁금한 대로 한국의 서울을 어떻게 소개했나 싶어 펼쳐보니 대략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서울에서의 걸 헌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보다도 쉬운 편에 속한다. 여대생도 오피스 걸도 때로는 젊은 주부들도 외국인에게는 쉽게 호의를 베푼다.

  당신이 뜻만 있으면 서울의 남산 공원 근처를 산책해 보라.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거나 접근하는 자에게 상냥하게 대해보라. 그러면 당신의 목적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중략)

  이와 같은 방법에 실패하거나 자신이 없거든 서울에 있는 많은 고급호텔, 예 컨데 G호텔 B호텔 등에 투숙하라.

그리고 플로어 맨 에게 약간의 팁을 쥐어주며 넌지시 귀띔해 보라. 잠시 후에 당신은 꽃다운 아가씨의 방문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하략)」

  이 어처구니없는 여행안내서는 미국 내 소개를 생략함으로써 미국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고 외국으로 원정 갈 미국인에게나 필요한 책이었다.

  허긴 미국 안에는 안내할 만한 곳도 사람도 없을지도 모르지... 다만 원정갈만한 사람들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