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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16:56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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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청초

    초가을이 되면서 정말 한참 동안을 살아 온 집에 오랜 만에 도배를 했다.
    그냥 살면서 도배란 이사 가는 것 못지않게 집안을 온통 벌집 쑤시듯 뒤집어
    놓는 일이다.

    사실은 이런 과정이 너무나 번거러운 걸 익히 알기 때문에 자주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오늘에 이르렀다. 게다가 나이까지 한참 먹게 되니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런
    일이 여간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시도하기가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구석구석 가족의 숨결이 스민 물건과 사진 책들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잊혀지고
    망각됬던 물건의 모습들이 샅샅이 들어 났다.

    하지만 어디엔가 숨겨 놓았을 법한 돈 다발은 하나도 발견을 못 하였다.^^
    잘 두고 잊어 버릴만큼은 아니게 우리의 기억력이 아직은 성한 모양이다.
    어떤 노인이 도배를 하는데 구석구석 돈 다발이 나와서 매일매일 돈 찾는 재미로
    기대를 가지고 도배를 했다더라는 일화를 들은 우리 가족들이 주거니 받거니 한
    이야기다.

    엊그제 같던 일들이 모두 이십수년씩 세월이 흐르고 중요해서 보관했던 영수증이
    이제는 쓸모 없는 휴지 쪽지로 누렇게 변해 있다. 은행에 가서 내야만 되던 모든
    각종 월별 생활공과금들이 자동이체로 바뀌어서 갈 필요와 영수증이 필요없이 되고...

    이제는 사회에 나가서 제 몫을 훌륭하게 다하는 성인이 되어서 분가한 나의 세
    아이들이 공부했던 소중한 책들은 임자를 잃어 버리고 이미 쓸모 없는 휴지처럼
    거실 마루에 켜켜히 쌓여 있다. 좀 지나면 해마다 학설이 바뀌어 아무에게도 줄수
    없게 쓸모 없이 된 책들, 아깝지만 이제 이것들은 선별해서 대부분은 버려야 된다.

    보자기에 싸서 임시로 치워 놓은 양말이라던가 옷들이 다른 보따리와 뒤섞여
    어디에 두었는지 잠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되어 버려 아침에 이를 찾느라 더운
    날씨에 땀 깨나 빼기도 했다.

    부엌의 그릇들도 모두 뒷곁으로 쫓아 냈다가 필요한 그릇 몇 개만 가져다 써보니
    그도 간단한 게 편하다. 공연히 쓰잘 데 없는 그릇들을 사 모아서 이를 씼고 닦고
    관리하고 치우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 게 다 부질없는 일이 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

    좀 자주 이사를 했더라면 훨씬 묵은 짐이 덜어졌을 터인데...
    이 집은 우리가 정원에 묘목 때 부터 키워 온 나무와 곳곳에서 수집해서 심어 놓은
    야생화를 좋아하여 뜨지 못하고 삼십여년 살다보니 자연히 묵은 살림들이 쌓였다.
    해묵은 옷들도 일년만 안 입으면 버리라고 하지만 그 옷에 얽힌 추억과 그 시절 사연
    때문에 아까워서 결국은 망설이게 된다.다행이 요즈음은 유행이 들쭉날쭉이라 자기가
    잘 골라 입으면 개성있는 휏션이 되어 그런대로 손색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 어떤 동네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양잠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명주고
    치에서 명주실을 자아 내서 옷감을 짤때 이건 이렇게 얽혀서 못 쓴다고 버리고, 저건
    거칠어서 마음에 안든다며 모두 버렸다. 바로 이웃에 사는 어떤 알뜰한 여인이 이를
    주워서 손질해서 옷감을 짜고 정성껏 마름을 해서 얌전하게 옷을 지어 놓았다.

    거지도 선 볼날이 온다던가.그러던 어느 날 어느 친척 집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버린 걸 주워서 옷을 지어 놓은 여인은 그럴듯하게 그 옷을 차려입고 갈수 있었다.
    모든 게 시원찮다고 던져 버린 이는 입고 갈 옷이 없어서 큰 단지에 들어가서 지게꾼
    지게에 올려져서 고개를 빼꼼이 내 놓고 갔다나 어쨌데나...
    이런 옛이야기는 나의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다. 모든 걸 아끼라고 하셨던 이야기인것
    같다.

    귀찮다고, 오래 되고 유행이 지났다고 모두 다 버려 버리면 무언가 그간 살아 온 나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져 버려서 허망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들은 다시 주워 담아서 집 한쪽 편에 도로 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깨끗하게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돈 되리라던 집안은 그간 살아 온
    조금은 구질구질한 우리 가족의 역사물들로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과거가 없는 현재란 있을수도 없고 뿌리 없는 부평초 모양으로 불안할 터이니까...
    적당히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다시 잘 보관하여 앞으로의 진실된
    삶의 방향과 좋은 근본을 삼아야만 될것만 같다.

                                         2004년 9월 4일

           (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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