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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에 본 美國](20)


공항의 촌뜨기




  촌뜨기가 서울구경을 가면 의례히 갖가지 우스꽝스러웠던 일이며 창피 당했던 에피소드들을 안고 돌아오게 마련이다.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아 보는 나로서도 촌뜨기를 면할 길은 따로 없었으니 지리 모르고 풍속 설고 귀 어둡고 말 잘 안 통하는 그 땅에서 별 수 없이 당황 초조해 했거나 망신스러웠던 일들을 수두룩하게 경험하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몇 가지.

  처음 로스엔젤리스 국제공항에서 내려 환승을 위해 국내선 터미널로 갈 때만해도 그 거리가 꽤나 멀어서 택시나 버스를 타야만 했을 터인데도 어디서 어떤 노선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감히 택시를 탔다가 바가지요금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겁이 나서 공항 구역의 복잡한 건물들을 오르내리고 이리저리 돌면서 물어물어 걸어서 40여 분만에야 찾아간 일이나,

다음 비행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도 전화 거는 요령이나 통화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아서 그곳 시내에 사는 친구들한테도 장거리 전화 한통 걸지 못하고

오직 대합실에서 버티고 앉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TV의 화면만을 지켜보거나 자동판매기에서 나오는 주스. 펀치 따위나 뽑아 마셨던 일 등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날 정도의 촌뜨기 짓들이었다.

  또 출영을 부탁해 두었던 첫 여행지 O공항에서 전화 때문에 쩔쩔매었던 일도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게이트만 나서면 대합실에서 성큼 맞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K군의 모습이 아무리 두리번거려 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친구가 엽서를 받지 못했나. 도착 시간을 잘 못 알았나. 날짜를 착각한건 아닐까. 아니면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등 별의별 궁리를 다 해보면서 10여분을 기다렸는데도 친구의 모습은 감감소식이요, 다른 승객들은 모두 흩어져 주위가 점차 고요해 지고 밤도 깊어가니 속만 바작바작 탈 수 밖에 없었다.

  궁리 끝에 용기를 내어 공중전화통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깨알같이 박혀있는 전화 거는 요령을 자세히 읽어본 뒤에 20센트를 투입하고는 다이얼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교환양의 낭랑한 목소리가 따발총같이 튀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기에 연실 「파든」만 연발하다가 끝내는 할 수없이 내가 외국인이니 천천히 좀 말해달라고 부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다시 뭐라고 말해 주는데 내 귀는 이제 아주 주눅이 들어서인지 그저 「쑤알라 쑤알라」로 밖에 들리지 아니하고 겨우 알아들은 말 한마디란 고작 「35센트 운운」 뿐이었다.

  아마 35센트를 넣어야 한다는 가 보다싶어 얼른 15센트를 더 집어넣으니 이번에는 동전만 딸깍 잡아먹고는 아무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아주 벙어리 통이 된 것이다.

  망연자실. 나는 얼마동안을 우두커니 서서 나타나지 않는 친구와 나의 어두운 귀를 원망하면서 전화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다. 등 뒤에서 어깨를 탁 치는 이가 있어 돌아보니,
아- 이 얼마나 구세주 같은 인물인가!   바로 K군이 아닌가.

  여지껏 그를 원망하고 있던 생각은 어디로 싹 가셨는지 금세 얼싸안고 10여 년만의 해후를 감격하기에 겨를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짐 찾는 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끝내 내가 나오지 않으니까 승객 명단까지 확인해 보고는 길 잃은 촌뜨기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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