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막바지 된서리라도 내리려는지... 청초 유리창에 비치는 햇살이 이제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이제 우리 집 정원에도 늦가을이 찾아 왔다. 모든 들꽃들은 스러지고 담장 위의 찔레꽃 열매만이 늦게 나온 이파리와 대비하여 예쁜 빨간 열매를 매단 채 차거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봄부터 시작하여 온갖 야생화들이 피고지던 화려한 시절은 다 끝이 났다. 이제 늦가을의 스산하고 쓸쓸한 기운만이 정원에 가득하다. 자그마한 다이야몬드형 하얀꽃이 피던 들꽃이 씨앗을 솜털에 싸서 놓은 채 심한 바람이 불면 실려서 날려 보내려는 듯 뭉글뭉글 뭉쳐놓고 벼루고 있다. 씨앗이 터져 나간 뒤 빳빳한 꽃 줄기 끝 빈 껍대기에 남은 한두개의 까맣고 모난 부추 씨앗이 이곳이 부추 꽃이 폈던 자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부추도 '파과(課)'인지 새까만 '파 씨앗'을 닮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자라나서 열매를 딸수 없기에 윗둥치를 잘라 냈던 감나무가 이제는 옆으로도 가지를 뻗고 더욱 우람하게 커 버렸다. 올해 따라 유난히 많은 열매들을 맺고 간간히 떨어진 잎사이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알지도 못 하고 지난 어느 여름 날, 우리가 발견 했을 때는 이미 어떤 작은 새가 찾아 와서 나무가지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들을 키워 품었던 새 둥지만이 빈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산수유 나무가지에 덩그머니 매달려 있는 빈 새둥지... 어느 새 임자들은 떠나 버려 늦 가을의 쓸쓸함을 더 하고 있다. 사람도 저와 같이 어렸던 자식들은 모두 커서 제 가정을 이루고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으니 자연의 이치는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인다. 오상고절(傲霜孤節) 국화라지만 한옆에 있는 호박잎과 꽃이 아직은 푸르다. 지난 번에 늦게 열려 예쁘게 자라던 동그스럼하고 연해 보이던 그 애호박은 어느 누가 탐을 냈는지 어느 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예리한 칼로 호박의 삼분의 일쯤을 싹둑 잘라 가 버렸다. 길가에서 담위로 올려다 보이는 단풍나무에 매달려 뒤 늦게 열려서 길가를 오가는 행인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고 향수를 느끼게도 해 주었을 호박이 었을 터인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된장찌개를 앉쳐 놓고 급하게 그 호박 생각이 났나 보다... 따 갈려면은 아예 몽땅 따서 가져 가 버릴일이지... 도심(都心)도 아닌 주택가의 인심이 자못 사납다고 느껴진다. 이제 막바지 된서리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이 움침하고 부는 바람도 스산하다. 흰 눈발이라도 내릴 듯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서리 맞기전에 호박잎 된장찌개라도 끓여 볼 생각으로 호박나무 순 끝의 부드러운 잎을 몇개 땄다. 줄기의 겉 껍질을 손톱 끝으로 벗겨 내면서 동그스럼 하게 커서 누렇게 늙은 호박으로 영글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애뜻한 마음을 접는다. 어차피 인생도 이와 같이 큰 희망 뒤에 가졌던 기대와 열망이 일순간 부숴지는 일을 본의 아니게 경험 해 가면서 ... 오히려 그것이 별것 아닌 하찮은 일에 머무른 것에 안도하면서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 나가는 게 아닐까 ! 04년 11월 17일 ![]() (새둥지) |

2009.11.20 12:20
막바지 된서리라도 내리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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