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눈 오는 풍경)
금년 들어 첫눈이 내렸다. 앞쪽 아파트 동간(棟間) 넓은 공간으로 흩날리며 내리는 눈은 살아 있는 생명체들 처럼 적적하던 우리에게 큰 생동감으로 닥아 온다. 게다가 함박 눈이다. 눈송이가 창 바로 앞에서 빙빙 돌다 다시 춤추는 발레리나 처럼 가벼운 옆걸음질로 가운데 무대로 미끌어지듯 훨훨 날려 가더니 다시 선회를 시작한다. 내리는 눈은 송이송이 제가끔 다른 모습으로 흩날리며 내리고 있다. 클 때 아이들마냥 강아지처럼 튀어 나가 보고 싶기도 하고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서 아파트 창문을 마냥 내려다 보면서 있고도 싶다. 얼른 디카를 들고 와서 시야가 닿는 한 샤타를 누른다. 우리 집 뒤 아래 쪽 동아연립 오랜지색 지붕 위에도 내리고 보통 때는 단풍드는 걸 보느라 관심 밖이던 상록수 나무 위에도 내려서 잠간 사이에 하얗게 쌓인다. 이제 십 여일 후면 크리스마스가 닥아 온다. 그때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문득 60년대 말 그 당시에는 신개발 지옄이라 우리가 이사 간 마당이 넓은 집에 눈이 많이도 내렸던 추억이 떠 오른다. 눈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내려서 아침에 현관문을 밀쳐 내듯이 겨우 열었다. 현관에서 대문에 이르는 길만 치우고 대문 밖도 겨우 나갈 정도로 치워야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자동차들이 없었다. 물론 우리의 어린 세 아이들은 너무나 기뻐서 당장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강아지처럼 펄적펄적 뛰던 풍경이 생각난다. 그 뒤로는 지구의 온난화 때문인지 그 처럼 많은 눈이 내린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눈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껑충껑충 뛰며 좋아하던 강아지들도 길에는 없다.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찌링찌링 3번이 지나게 울리고 있다. 싱크대에서 거실 전화가 놓인 데는 잽싸야 3번 정도 울려서야 받게 된다. 요새는 사람들이 성질이 급해져서 그런지 빨리 받지 않으면 금새 끊어 버린다. “여보세요” 급히 받고 보니 전주에 사는 여섯살난 손주 건우 녀석의 반가운 전화다. 아침에 전화를 했을 때 손녀딸 혜원이와는 통화를 했는데 늦잠을 자느라 못 받았다고 제 엄마가 시킨 모양이다. 보통 때 M.S.N. 화상 통화도 잘 하곤 한다. 좀 더 어릴때는 제 아빠가 틀어 놓으면 처음에는 잘 하다가 시간이 좀 가면 뒤 통수만 보이게 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다리를 올려 놓아 온통 발바닥만 보이게도 한다. 제 동생 혜원이와 서로 저마다 작은 카메라에 비친 할머니를 보려고 제 얼굴을 들이 대고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이제는 할 때마다 얼굴을 잘 비치게 하고 하루하루 덩치도 커지고 행동도 의젓 해 간다. 나이가 어리니 대화의 폭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매번 전화를 끊을 때는 끝 인사로 “건우야 할머니는 건우를 하늘 땅 만큼 사랑하는데 너도 할머니 사랑 해?” 그러면 “응 ” “얼마큼 사랑해?” 하면 전에는 “응~~ 우주만큼 사랑해! ” 해서 나를 놀래켰다. 어린 게 우주가 한없이 큰 건 어떻게 알았지? ... 한참 대답이 없기에 내가 미리 아는 척 “우주만큼 사랑 해?” 하고 말을 거들었드니 “ 아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만큼 사랑 해” “ !!! ” “거기도 눈이 오니” “응” 무어라 형언 할 수 없는 감회가 잠시 사이에 오간다. 문득 다시 앞창을 쳐다보니 영화관의 와이드 스크린 보다 더 큰 앞 창문으로 하얀 눈송이들이 끝도 않보이는 하늘에서 한도 없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09년 12월 5일 ![]() (손녀 혜원이 손자 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