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에 본 美國](21) 쉔리 레스토랑 나는 내가 흔히 보아온 미국 사람들의 복장이 아주 자유분방하고 대중적이라고 느껴왔었기에 이번 여행 기간 중에도 나의 복장에 대하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흉내라도 낼 듯이 줄곧 남방셔츠나 T셔츠 따위의 간편복만을 즐겨 입었으니 사실 그때 그곳의 기후나 나의 여행 목적 등으로 보아서는 그보다 더 편리한 옷도 달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는 아직도 고급 신사들만이 출입하는 사회가 엄연히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그냥 T셔츠를 입은 채 그들 사회 속에 끼어들었다가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피츠버그 시에서의 일이다. 나의 오랜 동안의 절친했던 친구 닥터 손 내외는 나를 구경시켜 주느라고 그 시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다니다가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내게 무얼 먹겠는가고 물었다. 나야 어차피 절에 간 처녀 격이라 아무 거고 사주는 대로 얻어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왕이면 이렇게 만만한 안내자가 있을 때에 이곳의 고급 식당 구경이라도 한번 해볼 욕심으로 여기서 제일 잘하는 스테이크를 먹어보자고 청하였다. 그는 고개를 잠깐 갸우뚱하더니 차를 몰아 쉔리 공원 어귀의 한 식당 앞에 멈추었다. 이름은 「쉔리 레스토랑」. 우리가 문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 속에서 정장한 웨이터 하나가 나서며 정중하게 맞이한다. 아차! 나는 그제에서야 나의 복장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다. 『여보게 이런 옷차림으로 여기 들어가도 괜찮겠나?』 나는 황급히 닥터 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태연한 듯이 『모른 척하고 따라 들어와 보게. 안되면 뭐라고 하겠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무슨 창피한 꼴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은근히 불안해서 『여보게 우리 한쪽 구석에 앉세』 하면서 남의 눈에 별로 띄지 않을 만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홀 안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자리를 반 이상 채우고 있는 손님들 중에는 정장하지 않은 이라고는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신사들은 홍일점 옷차림의 내 쪽에 눈을 주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그런지 그들이나 또는 테이블 사이를 빈번히 오가는 웨이터들이 나의 행색을 자꾸만 훑어보는 것만 같아 꼭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 고급 식당의 필레 미뇽 스테이크 맛이나 디저트 크림의 맛을 미처 감미해 볼 틈도 없이 눈치 식사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 버리고는 친구를 재촉하여 뛰쳐나오고 말았다. 『후- 이거 촌뜨기가 너무 용감했던 것은 아닌가?』 하루의 과객에 불과한 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땅에 영영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할 상류신분의 닥터 손 내외에게는 지나치게 체면을 손상시켜준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거기도 이제는 점차 격하되어가고 있네. 그 전엔 입구에서 넥타이라도 내어 주더니 오늘은 아무 말도 않더구먼. 하기는 필레 미뇽 3인분 값 등 1백50달러를 내차기에는 좀 아까웠을지도 모르지.』 「후-」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