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쓸쓸하고 황량하게 눈 덮힌 들판에 ... 청초 2010년 새해 들어 오늘 새벽 40년 이래 처음이라는 폭설이 기습적으로 내렸다. 발코니 앞창으로 내다 보니 고운 채밑에서 솔솔 하얀 떡 쌀가루 쏟아져 내리 듯 끝도 없이 눈이 쏟아져 내린다. 갈증나게 내리는 눈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매번 애를 써도 이제까지는 기회가 닿지 않더니 드디어 오늘 그 소원을 풀게 됐다. 눈이 내리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른 아침 T.V뉴스에서는 김포공항이나 인천 공항이 쌓인 눈에 비행기들이 뜨지를 못해 하늘길이 막혔다고 전한다.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는 우리 아이들을 비롯 모든 사람들이 겪을 눈길 대란이 정말 염려가 된다. 시인의 눈에는 서정적으로만 보이는 이 눈이 많이 쌓이면 비닐하우스 속에 특별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그 속에 애지중지 자식 키우듯 보살피고 있던 닭이나 오리 들이 비명횡사를 당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 큰 손해를 보게도 된다. 지난 번 호남지역에 내린 눈으로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막막해 하는 표정을 담은 T.V. 화면을 보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철 없는 어린아해 처럼 눈이 왔다고 함부로 좋아 할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침부터 눈길이 미끄러우니 꼼짝말고 집에 있으라는 우리 아이들의 염려 전화가 마음에 좀 걸리기는 한다. 우리 집 앞창에서 바로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앞산의 설경(雪景)이 내 마음을 유혹하듯 손짓을 한다. 이를 뿌리칠 힘은 이미 내 마음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두껍게 옷을 겹겹이 챙겨 입고 부랴부랴 눈길에 넘어질세라 염려 해 주는 남편과 함께 외식도 할겸 집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 주인들이 두고 나간 승용차들이 그냥 눈을 고스라니 머리에 인채 주차 되어 있다. 미끌어 질 새라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큰 길로 나섰다. 요즘 와서는 매우 보기 드물어진 대나무 빗자루를 든 노인이 음식점 앞 도로의 눈을 쓸고 있다. 가까운 음식점에서 밥상에 올려 질때까지 뚝배기 안에서도 그냥 설설 끓고 있는 설농탕을 한 그릇씩 사 먹고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앞산으로 눈이 덮인 상수리 참나무 숲으로 가 보기로 했다. 차선(車線)도 인도표지(人道標識)까지도 눈속에 파묻쳐 보이지 않는 길을 건너려 는데 마치 얼게미 체에서 내린 떡 팥고물 처럼 눈발이 파실파실하다. 그런 눈길을 헤치고 차들이 앞으로 가려하나 그냥 헛바퀴만 돌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오가는 차들로 빌 새 없이 붐비던 큰 찻길에 어쩌다 꽁꽁 언 북극해를 헤치고 가는 큰 쇄빙선(碎氷船)처럼 버스가 느릿느릿 지나 가곤 한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면서 눈이 내렸는지 눈은 모두 나무 등걸의 북쪽면 가지옆에 붙어서 쌓여 있다. 가까이 가 본 참나무 숲은 한마디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파리가 무성하던 시절에는 가려져서 안보이던 등 굽은 가지들이 눈에 뒤덮힌 채 강한 색조로 알알이 몸체를 들어 내어 마치 묵화로 그려낸 듯 묘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자연스레 가까운 채마 밭으로 발길이 간다.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인근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일구던 조그만 채마 밭들은 경계선이 뭉개진 채 눈 속에 잠들어 있다. 요 며칠간 닥쳐 온 혹독한 겨울 추위에 살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다. 이미 가을 들어 말라 죽어버린 갈색 들깨나무가 그냥 눈을 뒤집어 쓴채 빳빳하게 서서 벌을 서듯이 한겨울을 보내고 있다. 무서리를 맞아 오그라 든 호박 덩굴들은 철망에 얹힌 채 그냥 눈을 덮어 쓰고 타고 난 숙명처럼 매달려 부는 북풍한설에 시달리고 있다. 가지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던 지난 여름, 짓푸르던 날의 영화를 잊은 채 말라 비틀어진 이파리를 용케도 매달고 가지나무도 고적한 이 눈 벌판에 서서 있다. 이제 이런 것들은 눈에 덮여서 이 쓸쓸하고 황량한 들판에 마치 극장무대의 장식 처럼 아무렇게나 벌려 놓여져 있다. 이들은 오는 봄까지 또 한해 맞이를 위해 이렇게 눈에 덮혀서 길고 긴 겨울 잠속에 잠겨 있을 것이다.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고미가와 준뻬이(五味川純平)의 인간(人間)의 조건(條件) 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연상되었다. 주인공은 전쟁 터에서 우여곡절 끝에 너무나 지친 몸을 이끌고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가 기다리는 자기 고향 집으로 돌아 가다는 길, 끝도 없이 펼처진 눈 덮힌 하얀 들판에서 힘없이 쓸어저 버린다. 그 위에 하염없는 눈보라가 치면서 내리는 눈이 그의 몸위에 소복히 쌓여 결국은 조금 불룩한 형상으로 남았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늙지 않고 낡지 않으면서 영원한 건 무엇이며 영원한 젊음을 구가하는 건 무엇이 있을까... 매서운 겨울 끝에는 봄이 올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제 남녘에서 따스한 봄 바람이 불어 오면 언땅이 녹아 내리고 눈 덮였던 그 밭 이랑에도, 죽은 나무가지에도 구비구비 또 다시 파릇파릇 새순들이 돋아 날것이다. 가까운 풀숲속에서는 온갖 산새들이 즐겁게 우지지고 사람들은 생기가 나서 다시 밭을 일구고 부지런히 무엇인가 씨앗을 뿌리며 새로운 봄을 즐거워 하리라. 자연에서는 이런 폭설도 녹아 땅에 스며 다음 해 밑거름이 되어 서설이 되게 한다. 언제나 순간순간 기적을 펼치는 이 거대한 자연 속 순환의 바퀴 속에 얹혀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2010년 1월 4일 ![]() ![]() ![]() ![]() |

2010.01.05 09:36
이 쓸쓸하고 황량하게 눈 덮힌 들판에 ...
조회 수 819 추천 수 12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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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 후배님.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잖아도 평소 후배님이 아름다운 그림에
훌륭한 내용의 글을 자주 올려주셔서
우리 7회 홈이 아주 윤택합니다.
언제인가 서로 만나 볼 기회가 생기겠지요.
이번 글은 눈(雪)으로 인한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썼던 글이라 그후 일어난 교통대란등이
내용에 취급되지는 않았지요.
이 글은 소식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작품일 뿐이니
읽는 분들의 양해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후배님,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가내에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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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가랑머리 소녀의 글을 읽는 듯 합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뵙고 싶어요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소망 이루시고 가정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