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0.01.09 10:35

달팽이 촉각

조회 수 665 추천 수 5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달팽이 촉각                                              청초



    이번에 내린 많은 량의 눈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03년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T.V에서 매일 처럼 보고 듣느니 폭설 대란, 눈 폭탄,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이 놀라운 풍경을 표현 해 낼까. 연구들을 하는건지...

    이는 기록적으로 내린 폭설의 실상을 시시각각 그대로 보도한 뉴스들이다.
    집안에서 이걸 보고 듣는 우리는 가히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움찔한다.

    이른 새벽 온 세상에 매카톤 급으로 쏟아져 내린 폭설에 온통 뒤덮힌 눈눈눈...
    메스컴의 표현이 지나친 게 아니라 T.V에서 보여주는 사실적인 화면은 너무나
    생생하다.
    이건 노상 겨울 눈 때문에 몸살을 치루는 대관령 넘는 길 이야기도 아니고 멀리
    시베리아 벌판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수도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문제가 좀 심각하다.

    이제 그치나 하면 다시 오고 또 오고...
    그대로 쌓인 눈이 밤새 얼어 붙으며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자가용은 모두 집에
    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등 대중교통에 사람들이 모여드니 그야말로 교통대란이다.

    가족들은 모두 녹은 눈이 다시 꽁꽁 얼기까지 해서 미끄러운 길에 젊지도 않아
    어설픈 내가 나간다니 걱정이 태산이라며 한결같이 말린다. 나도 유리창 너머로
    하얀 눈이 새파란 색을 발하며 깔려 있는 눈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를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은 자꾸 용기를 죽이는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주저앉고 말게 된다. 과감하게
    오늘은 용기를 내서 나가 보기로 했다. 한동안 무거워서 안 입던 밍크코트에
    속에도 할 수 있는 한 따뜻한 옷으로 겹겹이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입은 옷 무게에 어깨가 묵직한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흑곰을 방불케 한다.
    마치 북극 길 탐험에 나서는 기분으로 조심조심 현관문을 나섰다.
    이미 눈이 온지 이틀이나 지난 터라 길은 오가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욱으로 어떤
    길이 편한 길인지 가늠해서 알게 된다.

    보통 때면 그냥 스치고 지나쳤을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묻게 된다.
    “큰길 가 보도(步道)는 눈이 좀 녹았나요.?”
    “예, 눈이 녹아 질퍽해요. 그런데 발목이 좀 시리시겠어요”
    그처럼 중무장을 했는데도 내 차림이 춥게 보이나 하고 얼른 내려다 보았다.

    길이 미끄러울까봐 굽이 높은 까만색 부추가 있지만 피하고 운두가 낮은 평신에  
    편한 차림이 그렇게 보이나 보다. 사람들은 낯선 환경에 처하거나 이런 급박한
    일이 벌어지면 서로 보호하고 도우려는 관심이 생기는것 같다.

    너무나 안정되어서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문명사회 일수록 서로간의 관심도
    없을 뿐더러 서로가 별 아쉬운 게 없으니 냉냉하여 사람들간에 온기도 없이 느껴
    지게도 될것 같다.

    한낮이 되어 한가 해진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방배동 총동문우회에 도착을 하였다.
    오늘은 새해 들어 문우회 첫번째 강의가 있는 날이다. 선농수필문우회의 이현복
    교수님께서 신년 하례로 회원들에게 저녘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신 날이기도 하다.
    정답게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수업시간과는 달리 격의없는 문학토론등을 나누게
    되는 이 시간이 더 기다려지기도 했다.

    교수님을 비롯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따라 한 동안 안나오던 여러
    후배 문우들의 얼굴이 보여 반갑다.
    수업이 끝난후 우리는 근처 한식집에서 입맛대로 청국장과 선지해장국, 굴전안주에
    곁드려 넓적한 대접에 연한 노란우유빛이 도는 막걸리로 잔을 채우며 건배잔을
    높이 들었다.
    막걸리의 아주 순하고 알싸한 맛이란 여자들이 한잔 쯤 마시기에도 무리가 없다.

    "이상은 높게 우정은 넓게 사랑은 깊게..."
    교수님의 선창이시다. 물론 모임은 한결 같이 화기 애애 하였다.

    돌아 가는 길 문득 깨달았다.나는 언제나 누가 말리면 마음이 약해서, 조금이라도
    집안이 불편 해 질까봐서 거절을 못하고 하고 싶던 일도 참고 못하는 일이 많았다.
    마치 달팽이의 촉각처럼 조금만 건드리면 잘 가던 길을 멈추고 움추려 든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그 때로서는 귀한 자전거가 있었다. 아버지는 물론 남
    동생도 탔다. 나도 이를 못 하랴 싶었다.
    배우려고 몇번 뒤꿈치가 벗겨지면서 시도했더니 아버지가 질색을 하고 엄하게
    말리셨다. 완고하신 아버지가 말리시는 바람에 그만 자전거 타기를 그만 두어야
    만 했다. 그 외에도 별 저항도 안하고 양보하고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그 후로 여자들이 멋지게 마후라를 휘날리며 자전거로 큰길을 달리는 광경을 볼때
    마다 나 자신을 자책하며 완고 하셨던 아버지를 원망 하게도 된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가정이 조금이라도 불편 해 질까봐 하고자 하던 일도 못하고
    참으면서 지내 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오늘도 미끄러질까 걱정되는 공포심에.
    가족들이 말린다고 안 나갔으면 이런 즐거운 만남도 못 가졌을 것이다.

    실패할까봐 하는 공포심에서, 누가 조금 말린다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형편이
    안좋아서 라며 하려던 일을 그만 둔다면 자기 자신은 물론 사회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일은 접어 두고라도 사람은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더 단단한 방법을
    찾게 되면서 발전해 가는 게 아닐까. 모든 일이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것이다.

    옳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자기의 뜻을 밀고 나가는 일이 자기라는 존재가 있게
    되는 커다란 이유가 아닐까...
    이제서야 이 늦은 나이에 비로서 이 어렵지도 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2010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