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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에 본 美國](25)


홍보한국이 아쉽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의사 닥터 B는 까므스럼 한 피부색에 깡마른 얼굴 그리고 비교적 유창한 영어회화능력의 소유자였는데, 그는 회의 때에는 별로 그 존재를 부각하고 있지 못하다가 어느 칵테일파티 자리에서 나와 마주치자 대뜸 내게 이런 질문들을 해 왔다.

  『한국은 동족 간에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지요? 요즘도 자주 총질들을 한다면서요, 당신은 어느 쪽에서 오셨나요?』
  『한국인들은 어느 나라 언어를 쓰고 있나요? 일본어인가요, 중국어인가요?』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위정자들은 호위호식하고 있다지요?』 등등.

  처음에는 이 친구가 한국에 대하여 아주 무식하구나 싶어 호의를 가지고 설명 겸 답변을 해주었는데, 다음에는 한국의 체제가 어떻다는 등 점점 더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폼이 마치 제나라 방글라데시가 정치 경제 문화 학술 어느 분야에서고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이 압도하려는 자세였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면박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이 남의 힘에 의존해서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이제 겨우 두서너 해 전 얘기요, 너희 국민이 네 나라 독립의 민족적 영웅이라고 추대한 자가 횡령과 수탈로 국민을 배신한 것은 또한 엊그제 일이 아니냐?』

  『너희 나라에서는 연간 아사자(餓死者)가 백만 명이 넘는다던데 그건 사실과 다르냐?』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7백 달러인데 너희 나라의 그것은 백 달러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우리나라의 문맹자수는 이제 콤마 이하의 푸로테이지 인데 너희는 어떠냐?』
  『우리나라에는 의과대학만도 10개가 있는데 너희 나라는?』등등.

  아무튼 그는 코를 들지 못하고 슬그머니 다른 자리로 피해가고 말았다.

  그러나 속이 다 후련할 만큼 이 친구를 혼내주기는 했어도, 방글라데시 따위의 최저후진국 사람조차가 우리를 얕보려 드는데 괘씸한 생각과 왜 이다지도 우리나라가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가슴은 몹시 쓰렸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질 수 있었던 기회란 근년에 이르러서는 고작 6.25한국전이 그 최대의 이벤트여서 동족간의 유혈과 폐허와 기아와 혼난 만이 널리 알려져 왔기에

우리나라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호의를 갖고 있는 이가 아닌 한 비록 그가 상당한 인텔리 그룹에 속하는 인물일지라도, ‘이 친구나 전술한 미국의사 닥터 적커먼 처럼’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나 선입관이 그 옛날 것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이 특히 최근 수삼 년에 이르러서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세계 선진제국이 경원하리만치 급속하게 중진국대열에 동열하게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나는 이번 여행기간 중에 이와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그리고 그럴 적마다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의 모습을 오늘날의 한층 밝아진 모습들과 대치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거듭거듭 궁리해 보았다,

  여기서 나는 나의 외람된 의견을 전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일은 우리의 위정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점만을 강조해두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