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감성의 음의 무늬로 그린 노스탤지어 드보르자크의 삶과 음악세계
드보르자크는 푸줏간 겸 여관업을 하는
장남으로 태어나, 가업을 이어받기 원하는 아버지의뜻을
거역하고 집에오는 손님의 방랑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대한 동경심을 키우고 있었다.
16세에 가출하여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고학으로 3년 동안 공부하여 '카렐 코므자크' 악단의 비올라
주자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프라하 국민극장 오케스트라에 소속되고
'스메타나'가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음악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드보르자크는 자연스러운 음악 속에 체코민족의 애환을 담은
독자적인 작풍을 이루며 표제음악 전성기에 절대음악을
많이 작곡했고 미국 체류 중에는 니그로나 아메리칸
인디언 음악 요소를 곁들인 작품을 썼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면서 브람스,리스트,
바그너파와 교분을 나누면서 브람스의 소개로
[슬라브 무곡 제1집]을 출간,대성공을 거두었다
1891년엔 차이코프스키 초대로 러시아를 방문했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891년~1895년까지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교향곡 9번 '신세계'], [첼로 협주곡],[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
를 만들어 내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1901년 프라하 음악원
원장을 지내다 1904년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