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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잠깐 들르겠습니다”

경희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경희님이 왜 우리 사무실에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안녕하셨어요?”
“아, 오랜만이예요.”

경희님이 백합 화분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나는 벌써 여러 해 째 경희님으로부터 부활절에는 백합 꽃을 받고 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나는 매년 일어나는 이런 사건을 왜 그리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었다. 희고 맑은 백합은 4송이가 이미 활짝 피어 있었고 10개도 넘는 봉오리들이 탐스럽게 백합줄기에 매달려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백합 꽃 향기가 얼마나 높던지 내 조그만 사무실을 다 채우고도 내가 취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경희님이 얼마 전에 권사 취임을 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났다. 새파랗게 젊은 엄마가 신앙이라는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더니 어느 틈에 그 골짜기에서 백합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권사취임 소식을 들었어요. 축하!”
“부끄러워요. 자격도 없는데..”

내가 경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  내가 속해 있던 문학회에서였다. 그녀의 얼굴은 달같이 동그랗고 달같이 환했다. 나는 尸悶?이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글은 달같이 담백하면서 순수했다. 고향의 달처럼 호젓하고 으젓했다.

“아저씨는 몇 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갔어요.”

어쩌다 묻게 되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가슴이 아파왔다. 아니, 어떻게 이런 달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아들 딸을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아이고, 무심한 사내! 환하게 빛나고 달같이 둥글고 달같이 예쁜 여인을 두고 어떻게... 그 순간 놀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경희님은 어느새 백합을 나누어주는 향기로운 여인이 되어있었다. 오래 알던 사람들이라도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면 말로는 ‘고대로다, 고대로야’ 하지만 실상은 늙어 주름지고 무기력해져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상태를 직감하게 되는 법인데 오늘 만난 경희님은 어찌된 게 그 모습이 그윽하고 옛보다 더 향기로 왔다. 백합꽃 향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는 아들 딸을 의사로 길러 낸 의지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경희님의 부활절 기념 백합꽃 증정은 죽은 남편에게, 홀로 사는 시어머니에게 그리고 누구 누구에게.. 그 중에 내가 끼어 있었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남을 위로하다니. 갸륵한 경희님이었다.

살 맛 났다. 이 세상에서 나를, 특히 부활절에 나를 생각해주고 나에게 백합꽃을 주는 사람이 있다니.. 나 오늘 부활한 듯, 마음 저 속으로부터 백합이 피어난 듯 환해 왔다. 나의 이 기쁜 맘 경희님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 ?
    이용분 2011.04.23 12:41
    임수자님의 담백한 마음이 깃든 향기로운 글 입니다.

    순 백색의 백합화 같은 내용이 마음을 애뜻하게도 하고
    정화도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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